Review

책 /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유연하고단단하게 2023. 9. 30.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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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은 원래가 호탕한 성격이라 말투도 행동도 거침이 없어 때로는 적을 만들기도 했지만, 누구보다 사랑이 참 많았다. 똑같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오빠들은 어머니가 계셨다. 삼촌은 부모가 없었으니 마음 기댈 곳도 없었으리라. 부모 없이 형수 손에 자란 삼촌은 막내임에도 집안 대소사에 앞장섰다. 심성이 곧고 사랑이 많았기 때문이다. 누구의 시선 따위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생각에 올바르다고 여기면 그에 충실히 따랐다. 나는 안다, 결핍이 사람을 망치기도 하지만 성장시키기도 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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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어머니, 저 막둥이 순자에요. 그곳에서 평안하신지요? 내일이 추석이라 그런지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납니다.
그래서일까요? 어젯밤 꿈에 어머니를 뵈었어요. 어린 제 손을 잡고 시골길을 걸어가시다 엄지만 한 가지 하나 따 주셨는데 혀가 아리지도 않고 달콤했어요. 이에 뽀드득거리는 감촉이 참 좋았죠. 가지꽃에 한눈팔다 어머니를 놓치고 저만치 구름 따라 떠가는 보라빛 치맛자락을 멀거니 쳐다보다 잠이 깼어요. 
유난히 보라색을 좋아하시던 우리 어머니. 저 구름 좀 보세요. 어머니 만나는 꿈을 꾼 날에는 꼭 이렇게 보랏빛 구름이 몰려와요. 구름 사이로 보라색 꽃들이 뭉게뭉게 피어나네요.
벌써 새벽 4시 36분이에요. 오늘도 보랏빛 구름 타고 제 꿈으로 놀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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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자 유고 산문집,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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