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책 / 2023 트렌드코리아

유연하고단단하게 2023. 8. 26. 17:58


1. Redistribution of average

‘평균’이 사라지고 있다. 정확히 표현하면 집단을 대표하는 평균값이 무의미해지고 있다. 대푯값으로서 평균이 의미 있으려면 해당 모집단이 정규분포를 이뤄야 하는데,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분포의 정규성이 크게 왜곡되고 있기 때문이다. 평균이 기준성을 상실하는 경우는 ① 양극단으로 몰리는 ‘양극화’, ② 개별값이 산재散在하는 ‘N극화’, ③ 한쪽으로 쏠리는 ‘단극화’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평균 실종’ 트렌드의 배경은 구조적이고 추세적이다. 자본주의는 태생적으로 부익부 빈익빈의 불균형을 초래하는 속성을 지니는데, 코로나19 팬데믹이 2년 넘도록 차별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경제·사회·교육·문화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양극화가 가속화됐다. 각종 소셜미디어를 기반으로 준거집단이 다원화되고 개인 맞춤화 경향이 강해지는 가운데 시장의 전형성이 사라졌고, 규모의 효율에 극도로 좌우되는 플랫폼 경제와 경쟁의 외연이 넓어지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발달하면서 승자독식의 쏠림이 심화됐다.  평균 실종 트렌드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엄중하다. 평균으로 표현될 수 있는 무난한 상품, 평범한 삶, 보통의 의견, 정상의 기준이 변화하고 있다. 정규분포로 상징되는 기존의 대중mass 시장이 흔들리며, 대체 불가능한 탁월함·차별화·다양성이 필요한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취해야 할 전략은 다음 세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양극단의 방향성에서 한쪽으로 색깔을 확실히 하는 ‘양자택일’ 전략, 소수집단(때로는 단 한 명)에게 최적화된 효용을 제공하는 ‘초다극화’ 전략, 마지막으로 경쟁자들이 모방할 수 없는 생태계(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승자독식’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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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료를 설명하는 다양한 통곗값을 확인해야 한다. 최댓값과 최솟값이 목숨을 지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수일 수도 있지만, 중앙값·최빈값·표준편차 등 상황에 따라 필요한 정보가 다를 수 있다. 자료를 분석하기에 앞서 자료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다. 아무리 현란한 통계 기법을 구사하더라도 자료가 정규분포의 조건을 충족하는지, 편향된 분포를 보이는지에 대한 파악 없이는 정확한 답을 찾을 수 없다.   

평균이란 지금까지 우리에게 하나의 기준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현대사회에서 이것이 과연 적절한 방법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평균의 종말』을 쓴 토드 로즈Todd Rose 박사는 사람들을 정규분포상의 한 점으로 평가하는 ‘평균주의averagarianism’의 시대는 지났으며 이제 ‘개개인성individuality’의 시대를 맞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평균적 사고는 세 가지 오류로 이어지기 쉽다. 첫째, 평균 점수 하나로 사람을 평가하는 ‘일차원적 사고방식’에 빠질 수 있다. 개인이 지닌 수많은 특성은 서로 독립적이다. 예를 들어 사람의 키와 손의 크기는 비례하지 않는다. 따라서 여러 측면을 고려해가며 입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둘째, 정규분포를 기반으로 개인을 유형화 혹은 등급화하여 모든 것을 설명해내려는 ‘본질주의 사고’를 범할 수 있다. 사실 모든 사람은 맥락에 따라 달리 행동한다. 한 여성이 식당을 찾았을 때의 행동을 파악하는 데는 그가 20대·직장인이라는 분류보다 그가 가족과 방문했는지, 아니면 혼자 방문했는지를 살펴보는 맥락적 사고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셋째, 평균대로 살아야 한다는 ‘규범적 사고’에 얽매일 수 있다. 평균은 상태를 기술할 뿐 그 과정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다.


2. Cherry-sumers

전례 없는 인플레이션과 자산 가치의 하락으로 소비 심리가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세계경제 전체가 현대판 보릿고개를 넘고 있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비용 대비 효용이 뛰어난 것만 쏙쏙 골라 매우 합리적으로 구매하려 한다. 흔히 구매는 하지 않으면서 혜택만 챙겨가는 소비자를 ‘체리피커cherry picker’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진일보하여 한정된 자원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알뜰소비 전략을 펼치는 소비자를 ‘체리슈머cherry-sumer’라고 명명한다. 불경기에 ‘짠테크’ 소비가 확산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셈에 능한 요즘 소비자들이 나누고 쪼개는 실속소비는 과거의 불황 때와는 사뭇 다르다. 체리슈머는 자신이 필요한 만큼만 딱 맞춰 구매하는 ‘조각 전략’으로 실속을 챙기고, 함께 모여 소비하는 ‘반반 전략’으로 절약을 도모한다. 그리고 ‘말랑 전략’으로 유연한 계약을 찾으며 리스크를 줄인다. 체리슈머의 등장이 최근의 경제 악화에 기인하는 것은 맞지만, 1인 가구의 증가로 작고 유연한 소비를 선호하게 되는 구조적 변화이자 앞으로 계속 발전해나갈 추세적 변화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똑똑하고 창의적인 MZ세대들의 성향이 체리슈머 트렌드를 가속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은 체리슈머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체리슈머를 불황 속에서 꼼수를 부리는 소수의 특이한 소비자로만 바라봤다면, 이제 그 생각을 바꿔야 할 때다. ‘문간에 발 들여놓기’ 전략을 통해 브랜드 친숙도를 높이고, 가격대별로 촘촘한 제품군을 마련하여 다양한 소비자들의 니즈에 그때그때 대응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소비자들 역시 실속을 챙기면서도 소비자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 ‘매너소비자’의 덕목을 갖춰야 할 것이다. 소비자와 기업 모두 큰 어려움에 맞닥뜨리고 있는 가운데, 그 이후를 준비하는 변신의 계기를 모색할 시점이 다가왔다.


3. Irresistible! The new demand strategy

어떻게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낼 것인가? 이는 모든 비즈니스에 숙명처럼 주어지는 질문이다. 비슷비슷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품과잉의 시대’에 고객이 지갑마저 닫는 지금 같은 불황기에는 그 해답이 더욱 절실하다. 그러나 아무리 상품이 과잉이고 경기가 나쁘다고 해도, 전에 없던 새로운 경험에 소비자는 솔깃해지고 허를 찌르는 참신함 앞에서 지갑을 연다.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는 제품과 서비스가 지속적으로 상향 표준화되는 시장 상황에도 불가항력적인 수요를 만들어내는 수요 창출 전략을 ‘뉴디맨드New Demand’ 전략이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사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상품을 개발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방법론을 가리킨다. 수요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그 발생 상황에 따라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사용하고 있던 제품을 바꾸는 ‘교체수요’이고, 다른 하나는 가지고 있지 않던 제품을 구매하는 ‘신규수요’다. 이때 각 유형별로 뉴디맨드 전략을 펼치는 방식이 다르다. 교체수요는 ① 업그레이드하기, ② 컨셉 덧입히기, ③ 지불 방식 바꾸기를 통해, 신규수요는 ① 전에 없던 상품, ② 새로운 카테고리의 상품, ③ 마이크로 세그먼테이션에 기반한 상품을 통해 창출할 수 있다. 소비자가 열광하는 새로운 상품을 내놓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의도적으로 궤도를 이탈하여 최대한 이질적인 것과 부딪히며 집요하리만큼 파고들고, 전복적 사고로 무장하며 훈련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독창적이고 앞선 기술이 적용된 상품이라 할지라도, 소비자지향적 관점에서 출발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성공하기 어렵다. 답은 항상 고객으로부터 찾아야 한다.


4. The Neverland Syndrome

최근 한국 사회에서 나이보다 어리게 사는 것이 하나의 미덕이 되고 있다. 영원히 아이의 모습으로 사는 피터팬과 그 친구들이 사는 곳, ‘네버랜드’의 이름을 따서 우리 사회에 나이 들기를 거부하는 피터팬들이 많아지는 트렌드를 ‘네버랜드 신드롬’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네버랜드 신드롬은 ① 공주세트나 포켓몬빵 같은 아이템을 구매하는 등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하고, ② 외모를 유지하는 것을 넘어 승진을 마다하면서까지 현 상태에서 더 나이 들지 않으려 하며, ③ 아이들처럼 쉽고 재밌고 명랑하게 노는 것을 좋아하는, 세 유형으로 나뉜다. 우리 사회의 유년화는 단지 일부의 취향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사고방식way of thinking’, 나아가 ‘생활양식modus vivendi’이 되고 있다. 이러한 트렌드의 확산을 미래가 불안정하고 힘든 상황에서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에 젖으며 위안을 얻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동반하게 된 생애주기의 구조적 변화에 있다. 건강하게 오래 살게 되면서 청춘의 기간이 길어진 가운데, 생애과정이 다양화되며 어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전형적인 모습이 사라진 것이다. 네버랜드 신드롬은 사회 전체가 유아화되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낳는다. 자기중심적인 주장만 강요한다든지, 생명이 없는 캐릭터에 집착한다든지, 문제 발생의 원인을 자신이 아니라 타인이나 정부의 탓으로 돌린다든지, 자기 취향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등의 행동은 아동기적 특성과 관련이 있다.  청년의 활기는 극대화하면서도 유아적 미성숙의 징후를 최소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네버랜드가 유토피아가 될지 디스토피아가 될지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에 달려 있다. 유아적이고 무책임한 자기중심주의가 아닌 청년의 신선함과 발랄함을 가슴에 품을 수 있을 때, 우리 개개인은 물론 사회 전체의 진정한 성숙이 가능할 것이다.


5. Unveiling  Proactive Technology

돌도끼부터 인공지능까지, 인류는 기술 발달에 힘입어 차츰 쾌적한 삶을 누려왔다. 기술은 사람을 편리하게 해주는 도구지만, 지금까지는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이용자가 자신의 필요에 맞춰 조작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기술이 이용자에게 필요한 기능을 스스로 파악해 미리 제공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고객의 사용 흐름을 읽어 더 잘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기술, 나아가 고객이 필요를 표현하기 전에 고객을 위한 기능을 수행하는 기술, 궁극적으로는 고객이 필요를 깨닫기도 전에 먼저 솔루션을 제공해 불편함을 해소시켜주는 기술을 ‘선제적 대응기술Proactive Technology’이라고 명명한다. 고객 데이터가 축적되고 이를 인공지능이 학습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한 사람이 겪을 수 있는 다양한 맥락을 구분하고 그에 따라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선제적 대응기술은 이미 소비자의 일상에 광범위하게 스며들어 하루하루 적용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수준 또한 높아지고 있다. 소비자와 상호작용할 때의 주도성proactiveness을 기준으로 그 적용 수준을 ① 고객의 사전적 대응을 위해 정보를 제공하는 단계, ② 사용자의 맥락에 따라 기능이 자동적으로 맞춤 조정되는 단계, ③ 사용자의 필요를 예측해 해당 기능을 수행하는 단계로 나눌 수 있다. 특히 공공서비스 영역에서 선제적 대응기술의 적극적인 확산이 기대된다. 소비자가 환호할 수 있는 선제적 대응기술을 선보이기 위해서는 고객의 행동을 분석해 데이터로 축적하고, 그로부터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추출한 후, 타이밍에 맞는 즉각적인 대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소비자에게 선제적 도움을 주는 제품을 개발하려면 소비자행동에 대한 이해와 상상력도 필요하다. 소비자가 모르는 욕구를 먼저 파악하고 아직 발생하지 않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하는 상상력을 누가 먼저, 더 적합하게 발휘하느냐가 선제적 대응기술 경쟁력의 승부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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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트렌드코리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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