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부산스럽고 힘에 부치는 나날들이었다.
지난 주 3일간 지리산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아빠와 동생과 24시간 붙어 있는 건 우리 모두에게, 특히 내게 너무 힘든 일이었다. 내가 싫어하는 아빠의 일면들 - 품격 있지 않은 행동, 잘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것, 자기 고집대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 - 을 참아내지 못하고 나는 일일히 잔소리를 하며 받아쳤다. 그렇게 서로를 자잘하게 상처내는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폭식을 했다. 마침 아이허브에서 주문한 프로틴바와 쿠키들이 도착했길래 다 해치우고 숨쉬기도 힘든 상태가 되어 칼로리를 계산해보니 간식만 이천 칼로리 넘게 섭취한 꼴이었다. 아빠와 더 이상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 그런 데서 안도를 느끼는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 이런 부도덕한 감정을 남자친구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좋았던 척 연기하는 데에서 오는 피로감, 이 모든 것이 버거웠나보다. 나는 먹는 것에서 쾌락을 얻고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도피하려고 했다.
그 다음 날 청약에 당첨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인천 부평 대단지 아파트인데 출퇴근 하기 쉬운 위치는 아니지만 e편한세상이라는 브랜드 + 천 세대 넘는 대단지라는 점에서 괜찮다 생각하고 기대 없이 넣었던 게 덜컥 당첨이 되어 버린 것이다. 부랴부랴 관련 부동산 정보를 찾아보고 계약에 필요한 서류를 떼고, 퇴근 후 답사를 가보고 주말에 모델하우스에 서류를 내고, 부동산 관련 커뮤니티에 유료 상담 신청을 하고 상담 양식을 작성했다. 이 모든 일들과 동시에 갓 사귀기 시작한 남자친구와의 데이트와 대학 동창 모임을 병행했다. 내 에너지에 부치는 나날들을 보내면서 하루 2천 칼로리 이상 계속 폭식을 했다.
결론적으로 청약은 포기하기로 결정했고 지난 1주간의 폭식으로 1키로가 늘었다. 폭식 없이 이 모든 일들을 버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