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두 개인주의자의 결혼 생활

유연하고단단하게 2022. 8. 16.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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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했을 땐 고민해 보지 않은 ‘결혼생활이란 무엇이어야 하느냐’를 그때부터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론은 어렵지 않았다. 생활에서 꼭 이래야 한다는 당위를 빼고, 우리 부부가 원하는 방식을 합의하에 스스로 고르면 된다는 것. 그래서 각방을 쓰기 시작했고, 주말 중 하루는 자기만의 시간을 보냈다. 물론 함께 있어도 본체만체하는 것이 아니라, 한쪽이 혼자 영화를 보고 싶다고 하면 그동안 상대방은 다른 일을 하는 식이었다. 내가 책을 읽는 동안 아내 혼자 나들이를 다녀오는 일도 있었다. 자기만의 생활을 누릴 여유, 삶의 빈칸이 생기자 함께하는 시간도 더 행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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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존재를 잃지 않고
결혼생활을 꾸리려는 이들을 위한 팁 3

① 모든 면에서 다 맞는 사람은 없다는 점을 깨닫자. 별생각이 없으면 갈등하는 것이 결혼의 디폴트 값. 두 사람의 취향, 습관, 바람이 똑같긴 쉽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자.
② 자기만의 동굴(시공간)을 마련해 두자. 자기 안에 부정적인 기운이 쌓였을 때 들어가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는 자기만의 방, 그게 어렵다면 혼자만의 카페 타임 같은 것이 있으면 좋다.
③ 둘만의 일상을 어떻게 만들어 갈지 계획하자. 주말은 어떻게 보낼지, 여행 가면 어떻게 다닐지 각자 원하는 것과 상대를 위한 부분을 나눠서 생각할 것. 집안 살림도 몽땅 나누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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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든 혹은 다른 형태의 동반자든 함께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심과 이해심이 없으면 온갖 것이 다 갈등이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서로 간에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누가 모르랴. 알면서도 실행할 감정 에너지가 없기에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다. 감정이 상하면 자기 감정만 보이지, 객관적인 상황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다. 우리 부부는 감정에 여유가 없을 경우 각자 자기 방으로 ‘전략적 후퇴’를 한다. 아내는 “오빠, 나 지금 피곤해. 방에 혼자 있을래”라고 솔직하게 의견을 밝힌다. 워낙 직설적인 성격이라 내가 집에 오자마자 “나 지금 열 받았으니까 건들지 마”라고 선언하기도 한다. 나는 피곤한 얼굴로 조용히 방에 들어가는 식으로 의사 표시를 한다. 부부 사이라도 방문을 열고 마음대로 쳐들어오는 일은 거의 없다. 각자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 배려는 우리 부부에게 아주 기본적인 에티켓이다.

우리 집에는 아내가 애정하는 공간이 따로 있다. 바로 내 방 문가다. 어느 순간 인기척이 느껴져 내 방 문 쪽을 보면, 몸을 반쯤 숨긴 채 조용히 나를 응시하는 아내가 있다. 순간 ‘왜지? 공격하려고 그러나?’ 생각하지만 아니다. 기분이 풀린 아내가 나랑 놀고 싶어 온 것이다. 남편이 현재 자기랑 놀아 줄 여유가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남편, 뭐 하냐?”라며 말로는 시비를 걸지만 눈에는 사랑스러움이 그득하다. 기분이 좋아지면서 우리는 함께 집 안을 활보하며 논다.

갈등 회피 차원이 아니라도 각자의 시공간을 지켜 주는 것은 결혼생활에 큰 만족을 준다. 독서에 집중하고 싶을 때, 영화를 한 편 볼 때, 혹은 글을 쓸 때 우리 부부는 “나 지금 할 일 있으니까 방해하지 마”라고 외치고 마음 편히 자기 일에만 전념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결혼 초기엔 부부는 매 순간 함께해야 하는 줄 알았다. 티브이도 함께 보고, 함께 자고, 함께 나들이하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혼자 있기를 바라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대학생 때부터 홀로 자취하던 습관 때문에 누군가와 함께 있음이 낯설어서 그런 줄만 알았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자칫 결혼생활 자체에 불만을 가질 상황이 됐고, 결국 선택한 것이 각자의 시공간을 지켜 주는 지금의 모습이다. 독립적인 부부로 지내고서야 알게 됐다. 같이 있기 싫은 게 아니라, 같이‘만’ 있는 게 싫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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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큰 거울을 준비해 두고, 남편이 화를 낼 땐 그 거울을 보여 주거라.”
할아버지께서 살아 계실 적 손주 며느리인 아내에게 결혼생활에 대해 조언해 주신 적이 있다. 내가 메두사도 아니고 거울을 보여 주라는 건 왜일까. 그건 아마 화내는 사람은 자기 모습이 얼마나 추한지 알아채지 못하니, 거울을 통해 자신의 적나라한 못남을 마주하면 화가 눈 녹듯 사그러질 거라는 말일 테다.
인간이란 완벽하지 못하기에 결혼한 부부 모두 각자 비뚤어지는 순간이 있다. 아내는 일상적으로 자잘하게 비뚤어지고, 난 가끔 크게 비뚤어진다. 그럼에도 우리 부부가 큰 갈등이 없는 것은 아내 덕이다. 비뚤어지는 순간에 격차를 두어 최악의 순간엔 보듬어 주고, 나머지는 모두 실리를 추구한다. 진짜 거울은 아니지만, 놀라운 이해심으로 나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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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바버라 프레드릭슨이 주장한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열 가지 긍정적 감정’에서는 아래에 소개하는 감정을 살면서 자주 느끼면 그 삶은 행복에 가깝다고 한다.

1. 기쁨
우연히 방문한 음식점이 취향에 딱 맞거나, 평소 꼭 가 보고 싶던 호텔을 특별 할인 기간에 싸게 예약했을 때의 기쁨, 즉 우리가 흔히 “기쁘다”고 할 때의 그 기쁨이다. 행복해지는 데 어렵고 추상적인 수단만 있는 건 아니다. 기쁜 일이 자주 발생하는 삶은 행복하다는 뻔하다면 뻔한 이야기다. 그런데 정말 맞다고 생각한다. 우리 부부는 아주 열심히 기쁨을 추구한다. 지금도 우리는 강북권 최고의 파스타집을 찾는다고 여기저기 묻고 맛보고 다닌다. 며칠 전 먹은 화이트 라구 파스타는 말 그대로 기쁨이었다.

2. 재미
티브이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를 보며 깔깔댈 때, 바로 이 ‘깔깔’이 재미다. 고작 재미? 들을수록 행복이 별게 아닌 것처럼 보인다. 자주 재밌어하는 삶도 행복하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자주 웃는다. 물론 아내는 화도 자주 내지만…… 자주 웃기도 하니까 괜찮다. 내 할아버지는 생전에 자주 웃는 분이 아니셨다. 남자는 함부로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은 분이라 그랬다. 손주인 나를 보면 드물게 웃으셨는데, 평소 웃는 경험이 적어서인지 자연스럽지 않게 인상을 찡그리며 웃으셨다. 할아버지를 존경하지만 그분의 삶이 행복과는 거리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근엄한 삶도 가치는 있겠으나 행복한 삶과는 거리가 있다는 말이다.

3. 감사
누군가에게 감사함을 자주 느끼면 행복해진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의문스럽다. 나와 아내는 서로 자신에게 감사하라고 옥신각신한다. “오빠는 나 없이 혼자 살았으면 인스턴트 음식만 먹으면서 건강 다 망쳤을 거야. 다행인 줄 알아.” “어이구, 이것 봐라. H는 나 아니었으면 혼자 살았을걸. 나한테 고맙지 않아?” 서로 자기에게 감사하라고 우긴다. 그런데도 행복하다. 행복한 감정에 대한 새로운 이론 추가. ‘상대의 감사한 마음’을 ‘내’가 자주 느껴도 행복하다.

4. 희망
오늘보다 내일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거란 감정이다. 인간은 오늘의 행복으로만 살 수 없다. 늘 앞날이 어떻게 될지 걱정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희망이란 감정을 자주 느끼면 행복해진다고 한다. 사람들은 우리 부부에게 나이 들어서 둘만 있으면 외롭지 않겠냐고 말한다. 다음 세대가 없으면 어떤 희망이 있냐는 것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부정하지 않는다. 그들의 말처럼 희망이 없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남들 눈엔 반복돼 보이는 삶 속에서 사소한 발전을 찾기로 했다. 내년엔 돈을 모아 넓고 푹신한 소파를 사야지. 그 소파에 함께 앉아 영화를 보면 행복하겠지. 아내는 회사에서 승진을 하고, 난 이렇게 또 한 권의 책을 쓰고. 5년 뒤 혹은 10년 뒤를 생각했을 때 우리 곁에 사소한 변화는 있을 것이고, 그 정도 희망의 감정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 평온, 흥미, 자부심, 경외, 영감, 사랑 등 여러 감정이 있다. 교수님은 이 중 자주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 있으면 좀 더 적극적으로 추구해 보라고 덧붙이셨다. 강의에서 특히 내 귀에 쏙 꽂힌 것은 감정의 강도가 아닌 빈도가 행복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였다. 대단한 재미나 큰 기쁨을 가끔 느끼는 사람보다 자잘한 재미, 사소한 기쁨을 자주 느끼는 사람이 스스로 더 행복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우리 부부 역시 힘든 일을 겪었다. 때론 돈 때문에, 때론 이기심으로 여러 갈등이 있었다. 그런 아픔은 두 사람의 마음속에 쌓여 있다 문득 튀어나와 잘못된 언행을 하게 만들고, 우리 삶을 ‘안 행복’하게 만든다. 그런 마음을 바로잡는 방법은 대단한 게 아니다. 자주 재밌으면 혹은 자주 흥미로우면 그렇게 쌓인 감정은 ‘인생이 살 만하다’란 생각의 근거가 된다. 기분 좋은 느낌이 적금 쌓이듯 쌓여서 언젠가 찾아오는 힘든 상황도 이겨 낼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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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집안과 집안의 결합이란 말이 있다. 좋아하는 남녀 혹은 여여, 남남 단둘 사이의 일이 아닌 양측 가족 모두가 이어지는 이벤트라는 뜻이겠다. 가족이 두 배로 늘어난다는 의미도 된다. 하지만 난 이 말을 싫어한다. 가족이란 존재를 싫어한다는 뜻이 아니다.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긴 남우세스럽지만 난 양가 부모님을 잘 챙기는 편이다. 그럼에도 결혼을 가족 간 결합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결혼생활의 디폴트 값을 부부 두 명으로 보기 때문이다. 고를 수 있는 것과 무조건 해야 하는 것 사이엔 큰 차이가 있다. 가족을 챙기는 건 좋은 일이지만 옵션이다. 결혼한 두 사람의 행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고로 결혼은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 아닌 두 사람의 만남이 맞다.

더 들어가 보면 심지어 결혼은 두 사람의 결합마저 아니다. 서로가 화학적으로 결합해 바뀌는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에 고유한 개인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다. 결합해 바뀌며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맞춰질지 모른다. 그리고 그 바뀐 자리에 더 이상 자신은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상대방의 행동 중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면이 있더라도 관계에 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라면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해야 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상대방 역시 나의 어느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인정할 것이고. 그런 점에서 결혼은 두 사람의 결합이 아닌 두 사람의 공존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친구의 딸 결혼식을 위해 다음과 같은 기념사를 썼다.    
“가오리 씨, 결혼 축하드립니다. 나도 한 번밖에 결혼한 적이 없어서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결혼이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별로 좋지 않을 때는 나는 늘 뭔가 딴생각을 떠올리려 합니다. 그렇지만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좋을 때가 많기를 기원합니다. 행복하세요.”    
좋은 날이 많아야 좋은 결혼이다. 별로 좋지 않을 땐 딴생각을 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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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섭, <두 개인주의자의 결혼 생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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