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청주는 태어나서 처음 와보는 곳이다. 코로나 때문에 해외 여행을 갈 수도 없고, 더운 날씨에 국내 도보 여행을 하기도 어렵고, 그래서 휴직 기간 가볼만한 곳으로 생각한 것이 청주 국립미술관이었다. 사실 청주에 오기 전까지 올까 말까 엄청 고민을 많이 했다. 미술관 외에는 더운 날씨를 피해 다닐 곳이 마땅치 않고, 근처에 가성비 좋은 4성급 호텔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애매하게 돈을 들여서 와서 애매한 곳에서 시간을 쓰고 아깝게 며칠 의미 없이 소비하게 될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우유에 커피를 타 마시면서 오후에 내려가는 버스와 묵을 모텔을 예약했다. 흰티와 청바지를 입고 가방을 챙기는 동안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마음이 설렜다.
버스에서 내려 미리 봐둔 샐러드 가게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너무 배가 고파서 버스를 탈 정신도 없었다. 그렇게 도착한 작은 가게의 쉬림프 샐러드는 정말 맛있었다.
걸어서 예약해 둔 모텔로 이동했다. 도보로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숙소는 생각보다 더 크고 깨끗하고 조용해서 마음에 들었다.
조금 쉬다 근처 다이소와 홈플러스에 가서 테이블 매트와 아이브로우 마스카라를 구경했다. 테이블 매트는 몇 개가 마음에 들었지만 책상에 어울리는 것을 판단하기 어려워 집에 가서 고민하기로 결정. 마트에는 아이브로우 마스카라를 살 만한 브랜드가 없어서 패스.
청주 시내에는 하늘을 가리는 높은 건물이 별로 없다. 홈플러스를 나오면서 보이는 하늘이 좋았다. 구름이 많이 있었지만 깨끗하게 물드는 노을 하늘 빛을 감상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래서 선선한 날씨를 좀 더 만끽할 수 있는 테라스가 있는 카페를 찾아보고 야경이 유명하다는 카페를 찾아갔다. 언덕을 조금 올라가야 했지만 카페에서 맛보는 야경은 생각보다 더 좋았다.
역시 여행은 좋다.
앞으로도 여행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보다 해야할 이유를 믿자 ☆
2.
어제부터 미생 정주행을 하고 있다. 회사 생활을 열심히 살아내며, 미생으로서 버티고 살아남으려 몸부림치는 직장인의 삶에 대한 오마쥬. 어떤 부분은 몹시 사실적이고, 또 어떤 부분은 몹시 비현실적이어서 대리 만족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운동할 때부터 버스와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그리고 숙소에서 짐을 풀고 카페에서 식사를 하는 내내 미생을 시청했다. 그 결과 20회의 에피소드를 이틀 동안 클리어했다.
미생에서 오 차장과 김 대리의 캐릭터가 가장 비현실적이라고 느꼈다 (어쩌면 나에게 그런 공동체의식과 희생정신, 따뜻함이 결여되어서 그렇게 느낀 걸지도). 반면 나에게 가장 자주 공감과 감동을 일으킨 인물은 장그래다. 중산층에 미치지 못하는 가정환경, 회사생활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보다 내 자리를 지키고 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하루 하루를 분투하는 느낌으로 보내는 것이 닮았다. 그 약함과 헛점을 극복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아니 어쩌면, 그는 나와 닮았다기보다 내가 닮고 싶은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부족한 면을 감추려고 하지 않고,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면서 그것을 메꾸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이 더 근면하고 정직하게 노력한다. 자신의 과거에서 배운다. 남 탓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성실하고 담백한 노력을 쌓아 올리는 동안 그는 여러 번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팀을 기사회생시킨다. 회사 내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본인의 가치를 증명하고 인정받는다. 원래 좋은 사람이었고, 충분히 성실하게 노력했기에 그가 맞이한 결과는 무엇이 되었든 해피엔딩이었을 것이다.
3.
그런 드라마와 영화가 있다. 살면서 힘들 때 곱씹어 보자 싶은 장면과 대사들을 남기는.
미생에서 가장 좋았던 에피소드들도, 지금 옮겨 적기 보다는 차라리 힘든 날이 올 때 직접 꺼내어 보는 편이 낫겠다. 미생 속 인물들이 위기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견디어내고 극복하는 모습. www의 주인공이 치열하게 맹목적으로 일하고,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주인공이 본인의 직업적 역할을 충실하고 프로답게 이행하는 모습.
때로는 보고 배우고, 때로는 위로 받기 위해서.
https://youtu.be/ZfGzXCUqlJ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