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일인칭 단수

유연하고단단하게 2021. 2. 16.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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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살 무렵의 나는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거의 알지 못했고, 당연히 타인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래도 기쁨이나 슬픔이 뭔지는 대충 알고 있다고 내 딴은 생각했었다. 다만 기쁨과 슬픔 사이에 있는 수많은 현상을, 그것들의 위치관계를 아직 잘 분간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종종 나를 몹시 불안하고 무력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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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에는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 설명이 안 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만은 지독히 흐트러지는 사건이. 그런 때는 아무 생각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커다란 파도 밑을 빠져나갈 때처럼."
아는 동생은 한동안 말없이 그 커다란 파도를 생각한다. 경력이 오랜 서퍼인지라 파도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볼 문제가 많은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입을 연다. "하지만 아무 생각 안하는 것도 쉽지 않을 테죠."
"그렇지. 쉽지 않을 거야."
이 세상에, 어떤 가치가 있는 것치고 간딘히 얻을 수 있는 게 하나라도 있는가, 하고 그 노인은 말했다. 피타고라스가 정리에 대해 말할 때처럼, 흔들림 없는 확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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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단편집, <일인칭 단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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