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상처는 완벽하게 지워내기 어렵다. 지나간 시간과 기억을 전부 도려내면 모를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상처를 꾹꾹 눌러서 마음속 어두운 방에 가두는 것뿐이다. 고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건, 아팠던 기억의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문을 기꺼이 열 수 있는 용기를 키우는 일이다.
마음을 안아줄 수 있는 건 마음뿐이다. 그리고 ‘상처받은 내 마음’을 가장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건 ‘이겨내고자 하는 내 마음’이다.
취미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가장 많이 쓴 얘기가 직장생활이다. 하루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냈다. 나를 힘들게 한 스트레스와 상처가 회사에서 비롯될 때가 많았다. 고백하면 처음에는 회사 욕을 하고 싶어서 글을 썼다. 표현하면 마음이 누그러질까 싶었다. 저 상사 재수 없다. 출근은 지옥이다. 어쩜 이렇게 작고 귀여운 월급이 있을까…. 회사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쏟아냈다. 그런데 매일 이렇게 쓰다 보니 창피했다. 내 글에는 최악만 있고 최선은 없었다.
최악의 상처를 글로 묘사할 때 덧붙여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최선을 위한 다음’이다. 지난 상처를 되짚어볼 때는 다음에 상처받지 않기 위한 고민도 동반되어야 한다. 나는 머릿속으로 끝없이 ‘다음’을 시뮬레이션해본다.
-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할까.
- 다음에 또 그런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관계를 맺을까.
- 다음에도 같은 선택을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늘 ‘다음에는 어떻게 나를 지켜낼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상처를 글로 옮길 때는 이성적이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받아버린 상처가 커다란 흉터로 남지 않을 방법을 고민한 흔적을 남겨야 한다.
책을 읽다 보면 당장 밑줄을 긋고 싶을 만큼 와닿는 글귀를 만날 때가 많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글이 내 마음을 붙드는 이유는 하나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통해 내가 깨닫게 된 바가 있기 때문이다. 지식으로나 감정으로나 무엇으로든 말이다.
상처를 치유하며 ‘나다운 나’를 찾는 많은 방법이 있다. 그중 글을 선택했을 때 좋은 점은 ‘극복할 수 있는 나’를 스스로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상처를 글로 옮기면 어떤 일이 생길까. 정여울 작가는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상처가 있다면 일단은 혼자 글을 써봤으면 좋겠어요. 혼자 글을 써본 다음에 그게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상처와 거리가 생긴 것 같으면, 그다음에는 나를 진심으로 위해주고 좋아해 주는 사람한테 보여주세요. 그럼 더 치유돼요. 그 후에 글을 발전시키거나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세요. 그러면 신기하게도 내적 자아도 성인 자아도 활성화가 되고,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도 위로가 돼요.”
상처를 글로 옮기면 위로가 된다. 내가 나를 위로하고, 내가 남을 위로하고, 위로받은 남이 또 다른 타인을 위로한다. 삶을 지탱해주는 수많은 위로가 소리 없는 글에서 시작된다.
글쓰기는
상처를 이겨낼 자신만의 언어를 찾아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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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루 저, <내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