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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삶

유연하고단단하게 2020. 6. 14. 12:41

 

[명제 1] 자신을 싫어하면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

이 명제는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말을 바꾸어 표현해 보겠습니다.

 

[명제 2]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잘못된 명제를 믿고 있습니다.

 

[잘못된 명제] 자신을 사랑하면 타인을 희생으로 삼는다.

이 명제는 다음과 같은 옳은 명제를 잘못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기애'를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 오인해서 해석하면 위의 잘못된 명제가 나옵니다. 

 

[명제 3] '자기애'는 타인을 희생으로 삼는다.

앞서 설명했듯이 '자기애'는 자신을 미워하는 것에서 발생합니다.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은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자기상을 위조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타인에게서 빼앗습니다.

 

[잘못된 명제]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이 또한 다음의 옳은 명제의 잘못된 해석입니다.

 

[명제 4]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자애'에서 가능해진다.

'자기애의 부정'은 '자기혐오의 부정'이기 때문에 자애입니다.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자애는 '자신을 싫어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인간은 성장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기 위해 많은 것을 익혀야 합니다. 그것들은 자신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바깥에 있는 것을 익히면서 자기혐오의 씨앗이 생깁니다. 자신 안에 없는 것을 '훌륭한 것', '옳은 것'이라 믿고 그것을 갖고 있지 않은 자신을 '별 볼 일 없는 사람', '잘못된 사람'이라고 생각해 버립니다.

종종 사람은 '익혀야 하는 것'을 목표나 의무로 부여받고 그것을 할 수 없는 자신을 '쓸모 없는 존재'로 인식해 버립니다. 그러나 이런 목표는 때때로 완전히 도달하기 불가능하고 노력해서 익히면 익힐수록 목표가 더 높아지고 더 많아지면서 자신을 더욱 쓸모 없는 존재로 인식하고 자기 혐오의 싹이 자라납니다.

그러나 익히는 과정이 반드시 자기혐오를 동반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주체적인 것이고 그 경우에는 일일이 자기 혐오에 빠지지 않습니다. 초조해하지 않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익히면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자기 안의 감재적 힘을 전개하여 실현하는 바람직한 과정입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버리지 않아도 됩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버리면 살아갈 수 없게 됩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그 중에서 정말로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일상의 삶에서 판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필요하지 않은 것은 용기를 내어 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을 홀가분하게 만드는 것이 자기혐오에서 빠져나오는 길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필요한 것을 익히는 과정에서 자기에게 심어 놓은 '쓸모 없는 존재'라는 열등감도 '불필요한 것'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그 열등감 또한 용기를 갖고 버립시다. 이것이 자애를 실현하는 방법입니다.

 

[명제 5] '자애'는 자기혐오에서 빠져나옴으로서 실현된다.

여기서 부연할 것이 있는데, 자기혐오를 하는 자신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점입니다. '자기혐오를 하는 자신'을 혐오하면 자기혐오가 증대되어 사태를 악화하고 끝없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검토하는 과정은 자기분석과 자기반성을 해서 끝없이 자기 자신을 고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고민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것이 필요합니다.

 

[명제 6] 고민하는 것을 그만두고 자신이 느끼는 것에 주의를 기울인다.

자신이 느끼는 것의 의미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과거의 경험에서 상처받아 감각에 맹점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도록, 느끼지 않도록 하는 상태에서 스스로 빠져나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할 수 있을 때 '스스로 그 몸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인간은 살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자신에게 가르쳐주는 감각을 타고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중하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자신을 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가까이 다가옵니다.

 

[명제 7]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거기서부터 넘쳐나는 애정에 이끌리는 것이 진짜 친구다.

따라서 이렇게 됩니다.

 

[명제 8] 자신을 싫어하는 한 진짜 친구는 생기지 않는다.

 

 

 

 - 야스토미 아유무, <단단한 삶>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