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대한 미학적 이해
- 포스트 모던적인 미학 담론1)의 관점에서
#1
우리는 왜 그토록 몸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가?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이유를 들어보자면, 경제적 발전으로 인해, 삶의 양적 수준이 어느 정도 보장받을 수 있게 되면서, 삶의 질적 풍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될 수 있을 듯 하다. 보다 건강하고 질 높은 삶에 대한 요구는 인간의 삶의 환경이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인 채 넘어가도 괜찮은 걸까?
‘오늘날 몸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라는 문장은 조금 바꾸어서 말해질 필요가 있다. 이는 크게 두 가지의 문장으로 다르게 표현되어야 할 것 같다.
‘오늘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
‘오늘날 아름다운 몸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
첫 문장은 ‘몸’이라는 단어를 ‘건강’으로 대체시킨 것이다. 두 번째 문장은 ‘몸’ 앞에 ‘아름다운’이라고 하는 수식 어구를 붙인 것이다. 이 두 문장은 앞에서 다루었던 수정되기 이전의 문장과 단순히 외면적인 의미를 달리 할 뿐인 것이 아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이러한 관심이 촉발되게 된 데에 대한 또 다른 이유를 암시한다. ‘건강’과 ‘아름다운 몸’이라는 것은 공통적으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가치이다.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인간은 사회 구조가 원활하게 운행되도록 하기 위한 수단이고 부품이다. 이 때 사회는 인간에게 ‘건강’할 것을 강요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건강한 몸의 인간’의 노동에서 산출되는 ‘풍요로운 결과물’을 요구한다. 때문에 현대 사회에서 나의 ‘건강함’은, 내가 남들에게 뒤지지 앉는 생산력을 가지고 있고 내 능력을 충분히 발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하는, 나의 경쟁력이요 일종의 ‘스펙’으로 간주된다. (이는 건강함이나 수명이 빈부 격차와 어느 정도 비례한다는 데서 나타난다.2) 또한 이는 부유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건강함’을 쉽게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몸’에 대한 요구 역시 사회적 필요에 의한 것이고, 자본주의 사회 내 문화 산업을 통해서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 각종 대중문화 매체에서는 매우 협소하게 정의된 미의 이상 - 날씬함과 높은 키, 큰 눈과 오뚝한 코의 서구적인 외모 - 을 끊임없이 재생산해낸다. 자본주의 문화 산업에 종속된 우리는 유행중인 신체적 미를 획득하기 위해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소비한다.
그런데 ‘건강’과 ‘육체미’에 대한 강조는 모두, 결국 몸을 ‘몸 자체’가 아닌 하나의 ‘이미지’로 간주하는 관점이다. 우리는 사회적 강요에 의해서 ‘몸 이미지’에 엄청난 관심을 쏟고 있지만, 정작 몸의 본질적인 내용, 몸 자체는 배제시켜 버린 채로 있다. 결국 역설적으로 현대사회에서 우리의 몸은 소외되고 억압받는 상태에 놓여있는 것이다.
#2
시각 과정의 성립에서 주목해야 하는 점은, 우리는 결코 외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는 사실, 즉 대상 그 자체를 인식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사물 그 자체가 아닌, 망막에 맺힌 ‘사물의 반사광’, ‘사물의 상(像)’에 불과하다. 즉 대상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성질 가운데 감각기관에서 수용 가능한 부분, 즉 우리가 대상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만을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대상들은 모두 ‘왜곡된’ 채로이지, 결코 ‘대상 그 자체’로서가 아니다.
시각의 한계성은 시각 심리학, 특히 착시현상의 경험에서 잘 드러난다. 사람들은 보다 완전한 지각을 위해서, 인지의 과정에 있어 자신의 눈에서 받아들여진 감각 정보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맥락을 고려하여 해석하고 기억 속의 정보와 비교하는 종합적인 처리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외부에 존재하는 실체들은 3차원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것이 눈의 망막에 투영될 때는 2차원의 이미지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거리나 깊이, 형태에 대한 정확한 판단은 감각 정보에 의존하지 않고 기억 속에 저장된 지식에 더불어 의존하게 된다.4) 같은 물체를 보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인지하느냐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사회,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느냐, 그 사람의 어떤 경험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결론적으로, 보편적인 감각 경험은 가능할지언정 감각은 객관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인간의 감각은 주관적 경험이고 심리적 경험이다. 이는 곧 시각이 가치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미학적 논의가 바로 ‘응시 이론’이다.
서구의 오랜 역사 속에서, 특히 근대 이후에, 사람들은 ‘시각’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해 왔다. 그리고 시각은 그 작동 메커니즘을 보았을 때에도, 보는 자와 보여지는 대상 간에 권력구조를 성립시키게 된다. 보는 자는 대상을 자신이 인지 가능한 틀에 맞추어 왜곡시킨 형태로 인식한다. 그리고 보는 자에 의해서 받아들여지지 못한 대상의 성질은 내버려진다.
한편 사회적 권력을 가지고 있는 계층은 동시에 시각적 권력을 획득하고 휘두르게 된다. 이들은 ‘어떻게 볼 것이고, 어떻게 바라보여질 것인가’하는, 대중들의 시각 경험에 대한 인식을, 마음대로 규정하고 통제한다. 예컨대 오랜 가부장적 ·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 하의 문화에 익숙해진 우리는, 예술작품 이나 대중매체 속의 반쯤 벌거벗은 것으로 묘사된 여성을, 남성적인 시각에 기초하여 해석함으로써, 이를 쾌락을 가져다주는 매력적이고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인지한다. 하지만 이는 ‘있는 그대로의 여성’, ‘여성 그 자체’를 바라본 결과가 아니라, 한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내면화시킨 채 대상을 해석한 결과이다.
#3
‘시각’의 발동 체계의 특성상, 미학의 응시 이론에서 설명하듯이, 보여지는 대상은 그 자체가 아닌 왜곡된 형상(이데올로기까지도 투사되는)으로 읽히게 된다. 더군다나 시각적 이미지가 강조되는 현대 사회 속에서, 신체는 명백하게 하나의 ‘기호’로 기능하고 있다. 예컨대 날씬한 여성을 보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성적 가능성으로 읽도록 훈련받는다. 신체는 사회적 의미의 언어 내부 기호인 것이다.
이렇듯 오늘날 강조되고 관심을 받는 신체는 ‘생명을 담고 있는 유기체적 존재로서의 신체’가 아니라 단순히 ‘이미지로서의 신체’이다. ‘이미지로서의 신체’라 함은 비단 아름답고 멋진 몸을 이야기하는 것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건강한 몸, 웰빙에 대한 관심 역시 신체를 하나의 이미지로 간주하는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정상적인 몸, 건강한 몸에 대한 강조는 실은 신체를 사회적 경쟁력을 갖는 수단으로, 자기 가치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간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날에 추구되는 것은 몸 자체가 아닌 몸의 ‘이미지’일 뿐이다. 건강한 몸, 정상적인 몸, 날씬한 몸, 아름다운 몸. 그 어떤 수식어구도 몸 ‘자체’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닌, 몸 ‘이미지’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몸 자체가 아닌 몸 이미지가 더 중요해져버린 이 가치 전도 상황에서,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몸 이미지가 자본주의 사회 이데올로기에 의해 왜곡된 채로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마른 몸이 미적 이상으로 간주되기 시작한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이상적인 ‘이미지’(이는 본래의 인체 구조상 정상적이지 못한 모습임에도 불구하고)를 갖추기 위해 사람들은 저마다 다이어트에 힘을 쏟고 있다. 그리고 부쩍 양산된 다이어트 산업과 관련 식품 산업의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대중 매체에서는 뚱뚱한 몸은 게으름과 나태와 성적 매력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파하며, 대중에게 더 스키니해 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4
오늘날 (이미지로서의) 신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문제들을 자각하고, 신체를 둘러싼 문화적, 정치적 ‘전투의 현장’에서 스스로를 구출해내기 위해서는, 신체 ‘그 자체’를 좀 ‘건조하게(사회적 가치 판단과 여타의 이데올로기를 배제한 채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미지로서의 신체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신체를 촉각적이고 물리적이며 내장을 갖고 있는 존재로서 간주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의식을 가지고 신체의 물리성과 필멸성을 강조하는 몇몇 예술가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예로 Mona Hatoum이라는 예술가를 볼 수 있는데, 그녀는 신체의 안을 밖으로 내보여서 자신의 신체를 재현했다. 그녀는 신체의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초음파 촬영 기술자들을, 신체의 안과 밖의 표면의 시각적 스캔을 만들기 위해 내시경 수술과 결장 내시경 수술 전문가들을 고용했다. 그 결과물은 그녀의 설치작품 <낯선 신체corpsetranger>로 제시되었다. 녹음된 심장박동 소리와 숨소리가 담긴 비디오를 시청하면서 관람객들은 카메라가 신체를 뜯어보다가 마침내 다양한 여러 구멍을 통해 위와 내장, 질로 침투하는 것을 따르게 된다. 이렇게 예술가는 낯선 심지어 ‘그로테스크한’ 시선을 제시함으로써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하에서 남성적 시선으로 몸을 바라보는 것에 저항한다.
#5
나는 ‘이미지’ 내부의, 본질적인 몸의 존재에 대해 접근해야 했다. 내 몸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각 신체의 부분들이 어떤 기능을 가지고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하나의 유기체로서 내 몸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남들에게 ‘드러나 보이는’ 몸이 아닌 ‘진정한’ 몸, 오직 본질적이고 내용적인 존재로서의 몸을 제대로 알아보고자 하는 노력이, 분명히 필요하다.
1) 포스트모더니즘 미학 담론 : 근대 이후의 모더니즘 미학 담론에 대한 반향으로 제기된 담론들. 삶의 불확실성, 현대 사회에서의 인간 존재의 단편화, 자아와 주체의 소멸 등의 문제를 제기한다. 예술적 측면에서는 재현 불가능성, 혼성모방, 대중주의, 탈 경전화, 행위와 참여 등을 시도하고 강조한다. 구글 검색 참조.
2) (건강 형평성 문제와 관련된 논문) Kunst AE, Bos V, Lahelma E, et al. Trends in socioeconomic inequalities in self-assessed health in 10 European countries. Int J Epidemiol 2005;34:295-305.
3) 인터넷 검색 참조 - 다음 카페 ‘자연의 힘’ 13번 게시 글 ‘파놉티콘 관찰의 이론 의존성’ 참조
4) 오세진 외, 『인간행동과 심리학』, 학지사, 1999, pp. 71-94 참조.
우리 몸의 이해 막장 기말리포트 중에서
주제의 연장선상에서 '몸, 그 참을 수 없는 무거움'이라는 책을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꽤 재미있어 보였다. 나중에 읽어봐야지.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장품 유통기한 보는 법 (0) | 2010.04.05 |
---|---|
제목을 입력해 주세요. (0) | 2009.12.19 |
다시 (0) | 2009.11.10 |
내가 안되는 이유 (1) | 2009.11.01 |
ㅆㅂ (2) | 2009.1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