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난 요가를 진심으로 즐기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시켜서 한 일도 아닌데 잘해야 한다는 강박을 끌어안고 있었다. 시험 보는 수험생처럼 기초를 탄탄히 하고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매사에 진지하고 치열해지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그것대로 좋다. (열심히 하면 좋잖아요.) 하지만 무리한 목표 탓에 현재 누릴 수 있는 즐거움마저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의문이다.
요가가 주는 정신적 고양, 고요하고 단순한 세계, 자유로움, 가벼움, 넉넉함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그건 정말이지 손해 보는 짓이다. 즐기지 못하면 손해다.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무인양품의 디자인 철학은 “이것으로도 충분하다.”라고 한다. ‘이것이 좋다’를 내세우는 게 아니라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에 놀랐다. 더 많은 장식, 더 많은 기능이 아니라 생활 속 쓰임에 최적인 것만 고수하는 것이다. 금욕과 절제, 체념이 아닌 ‘선택’이다. 이로써 우리는 더 깊이 사물을 경험하고 만족하고 즐길 수 있다. 아주 멋지다. 무리해서 그 이상을 욕심내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무인양품을 완성하는 단단한 철학 아닐까.
생각해보면 만사가 그렇다. 돈을 얼마큼 벌어야 충분할까. 일은 얼마나 해야 충분할까. 주변의 인정은 얼마나 받아야 충분할까. 옷장에 옷은 얼마나 많아야 충분할까. 마음 나누는 친구는 몇 명이나 있어야 충분할까. 하루 식사는 얼마나 먹어야 충분할까. 말은 얼마나 해야 충분할까. 경계 없이 많을수록, 빠를수록, 클수록 좋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서 자신만의 기준을 새롭게 세워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나는 지금 이대로 충분한지도 모른다.
(다시 한 번) 즐기지 못하면 손해다.
이아름,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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