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아 저, <빵 고르듯 살고 싶다> 중에서
-
손을 깨끗히 하려고 쓰는 비누부터 먼저 씻는 마음. 내 손을 깨끗하게 해주느라 더러운 거품이 묻은 비누를 닦아주는 마음.
이 마음이 필요할때가 분명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것이 언제일지 떠올려보았다.
하나, 늘 말을 잘 들어주는 이에게 습관처럼 내 마음을 늘어놓았던 날. 혹여 내 마음 때문에 친구 마음에 구정물 거품이 묻어 버렸던 건 아닐까?
둘, 스트레스 받은 마음을 스스로 정리하지 못하고 가까운 사람에게 괜히 투정부리며 이상한 방식으로 화를 풀던 날, 나로 인한 더러움은 스스로 닦아낸 후 사람을 대해야 했는데 그게 마음처럼 되질 않았다. 가까운 사람이니까 이 거품도 이해해주겠지... 하던 이기적인 착각.
비누를 닦아내듯 나를 뱅글뱅글 돌리는 방법을 배우자고 다짐하며 긴 손 씻기 시간이 끝났다.
-
"어떤 일에는 불행한 것이 좋은 것이다"(보들레르, <파리의 우울> 중)라는 글귀 하나가 생각났지만 '아 좀 다른가' 하고 머쓱하게 웃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건 분명 좋은 발견이었다. 나쁜 일로 하루를 망쳤다고 생각하는 마음에 작은 좋은 행동 하나를 더하는 방법.
'나쁜 일-나쁜 일=나쁜 일 없음'은 인간이 이룰 수 없는 공식이지만 '나쁜 일+좋은 일=나빴지만 좋은 일'은 인간이기에 가능한 공식이다.
-
각자의 인생에 맞추어진 아찔한 고비들은 어쩔 수 없이 존재한다. 당연하게도 모든 일의 과정에는 무수히 많은 무너짐과 실수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서같은 그림들을 계속 그렸고, 나의 방향성이 보이는 책을 꾸준히 보고 수접하며 나름대로 공부를 했다. 내 이야기로 종종 책을 만들며 결이 맞는 곳과 일을 했더니 어느덧 작업실이라는 공간을 필요로 하는 일상이 생겼다. 신기하게도 느낌 좋은 낙서, 귀엽고 담백한 그림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었기에 꾸준히 일로서 해올 수 있었다. 좋은 세상이다.
-
뭐든 놀이로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예컨대 회사에서 심각한 회의를 할 때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잔뜩 찡그린 진지한 표정을 짓고 었으면서도 속으로는' 사회생활 놀이를 하는 중이라면?' 하는 점잖지 못한 생각을 한다. 그러면 상황 자체가 시트콤처럼 느껴지고, 테이블에 모인 사람들의 캐릭터가 두드러지며 대사 하나하나가 웃기게 들린다. 실시간 시트콤에 푹 빠져서 엉뚱한 생각을하다가 대표의 내지르는 소리에 어깨부터 반응해 화들짝 놀라기 일쑤였는데, 화는 잘 내지만 사실 조금 여린 캐릭터인 대표는 이렇게 반응하는 것이다.
"왜 그렇게 놀라. 심장이 안 좋아?"
그럼 이제 내 대사 차례.
"네."
"진짜? 어. 미안."
괜찮다는 표정을 하고서 떠다 놓은 물을 마시며 생각한다
'좋진 않겠죠.'
뭐, 좋진 않을 테다. 심장 좋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나는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여러분이 제공해준 이 시트콤 같은 상황에 제일 몰입하고 있는 것.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0) | 2019.08.03 |
---|---|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0) | 2019.08.03 |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0) | 2019.06.13 |
[김하나의 측면돌파] 어쩌라고, 되면 좋고 아님 말고! (0) | 2019.05.31 |
아프다면 만성염증 때문입니다 (0) | 2019.0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