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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의 측면돌파] 어쩌라고, 되면 좋고 아님 말고!

유연하고단단하게 2019. 5. 31. 20:23

 

팟캐스트 [김하나의 측면돌파]

허지원 임상심리학자 저 <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 인터뷰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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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불안감을 가져오는 사건들은 많은 경우 당신의 노력이나 기대와는 상관없이 운과 상황에 의해 좌우됩니다.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당신은 한다고 했습니다. 수백번 무너져내리는 마음을 일으켜가며 어떻게든 끝까지 해보려 했습니다.

당신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운이 나빴을 뿐입니다. 주인공이 당신이었으면 좋았겠지만, 내가 아니면 안되는 일 따위는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억지로 만들어 낸 가치가 아니어도 당신과 나는 이대로 충분합니다.

기대하세요. 내일의 날씨. 이따가의 점심 메뉴. 오랜만의 시내 외출. 개봉할 영화와 새로운 드라마. 또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는 힘은 지치지 않는 기대에서 나옵니다. 오늘 점심으로 먹은 달걀 샌드위치가 형편없었대도, 저녁에 먹을 소고기덮밥은 괜찮을 수 있습니다. 이번의 성과가 형편 없었대도 내일 보기로 한 영화는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취미는 기대하는 것. 백 번을 실망한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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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 이 책 제목이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에요. 그러니 자기 자신에 대해서 함부로 아무렇게나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쓰시기도 했는데요. 자기한테 그렇게 큰 문제가 없는데도 비정상으로 여기거나, 아니면 스스로를 잘못된 라벨링을 매기거나 정체화하는 경우가 많다고 보시나요?

허 : 네. 큰 문제가 없다기 보다는, 문제들은 누구나 있는데 그 문제들에 너무 몰두하면서 자기 비하하는 표현들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너무 자기를 낮추는 표현을 많이들 사용하시구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아무 기대도 갖지 않겠다,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너무 무례하게 대하는 것들을 봐요. 특히 어린 친구들의 경우 '이번 생은 망했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말의 힘이라는 게 너무 강력해서 그 프레임에 갇혀버릴 수 있거든요. 그래서 학부 수업을 할 때 학생들에게 많이 하는 이야기가 비밀번호 같은 것을 설정할 때 '건물주' 같은 것으로 해두라고 해요. 나의 구체적인 성공의 모습을 자꾸 쓸 때 그게 어떤 주술적인 힘이 되어서 나에게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김 : 책을 읽으면서 말에 대해서 민감하신 분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예를 들면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는데, 물론 소확행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따뜻한 차 한잔 이라든가 셀프 허그, 담요같은 것에 대해 책에서 이야기를 하셨지만 동시에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말고 그 반대되는 무언가를 포기해버리는 것에 대해 우려하셨잖아요. '나는 소확행만 누리다가 끝날거야, 나는 진짜 거대한 행복을 누리지 못할거야'라는 것을 오히려 불러일으키는 부분.

또 항우울제라는 말 대신 '뇌기능개선제'라는 말을 쓰자고 하셨죠. 이것도 프레임을 다르게 가져가는 거잖아요. 항우울제는 나는 이미 우울한 사람이고 그것에 대해서 싸우는 느낌이라면 뇌기능 개선제는 뇌의 어떤 부분이 잘못 되어 그것을 기능적으로 고치게 하는 느낌.

또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말장난 이제 그만둬야 된다고 하신 것도 인상 깊었어요. '우리는 매일 매일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야한다' 이런 것도 좋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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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 최근 한동안의 주요 키워드인 '자존감'에 대해서 참 이야기를 많이 하고 계시잖아요. 자존감에 대해서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자존감의 허상이라고 하는 게, 자기개발서 같은 데에서 자존감이 높아야 한다고 마구 외치는 것이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다면 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야, 라고 자존감을 더 떨어뜨리게 만든다거나. 또 자존감이라는 것이 높낮이를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이고, 높다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닌데 무조건 자존감을 키워라고 외치는 것. 그런 것에 대해 우려를 많이 하시나요?

허 : 상담을 받으러 오는 친구들은 한결같이 자존감이 낮다고 이야기를 하죠. 저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없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자존감의 정의 자체가 자기 자신을 얼마나 호의적으로 자각하는지 하는 자기 평가거든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보통 자기 자신에 대해서 낮게 평가를 해요.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 겸손해야 한다는 게 전통적인 미덕이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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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트렌드가 우울을 극복하고 맞서 싸우려 하기보다는 왔구나, 하고 인정하고 익숙해지고 놀라지 않고 함께 안고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거에요. 우울은 계속 찾아올겁니다. 일년 일년 노화가 진행될수록 계속 더 우울해질거에요. 그대신 우리는 우울에 맞설 수 있는 힘, 나의 문제 해결력의 강도와 다양성을 키워야합니다. 더 커질 수 있을 거라는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와 맥주를 알고 즐길 수 있는. 스타킹의 올이 나갔을 때 주저없이 슬픔 없이 쓰레기통에 버릴 수 있는. 그러니 이번 생은 글렀다고 내팽기치지 말고 우울할수록 꼬박 꼬박 출근하고 착실하게 일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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