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폭식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밥을 먹고 나면 빵이 먹고 싶고, 빵을 먹고 나면 과일이 또 먹고 싶고, 과일을 깎아 먹고 나면 달달한 초콜릿이 먹고 싶어서 초콜릿을 사먹고 나면 또 아이스크림이 그렇게 먹고 싶고....... 그렇게 한번 식사를 시작하면 거의 하루치 칼로리를 한꺼번에 섭취해서 다음 두 끼 정도는 굶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폭식의 연속을, 그냥 겨울이고 하니깐 식욕이 너무 돌아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은 게, 폭식이 '억압된 나의 의지가 분출되는 통로'였다는 것이다. 뭔 소리고 하니, 요즘의 내 삶을 돌이켜 보면 도무지 내 인생이 나의 의지로 꾸려져 나가는 것이 아니다. 진짜 내가 선택한 모습으로, 선택한 방향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의지에 이끌려서, 외부로부터의 강요로 인해서 나도 모르게 그냥 어찌어찌 살아가고 있다. 마치 물결 따라 이리저리 둥둥 떠다니는 버려진 배처럼. 도대체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 구체적인 목표도 없이 그저 다들 하니까 영어 공부를 하러 학원에 다니고. 개인적으로 뭔가 얻고 느끼고 싶다는 별다른 동기 부여 없이 그냥 소속감 때문에, 책임감 때문에 동아리 일을 하고. 돈을 벌어두어야 한다니까 하기 싫다고 징징거리면서도 과외를 하러 다니고. 딱히 보람이랄 것도 없이 그냥 시간 때우기식이 되어 버린 사회 봉사를 하고. 이렇게 삶이 나의 진정한 의욕, 의지와는 거리가 멀어진 지 오래이다. 그냥 숨쉬어야 하기 때문에 숨쉬고, 먹어야만 하기에 먹는 것처럼 멍하게 수동적으로 살아가고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그나마 내 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는 일이 '먹는 것'이었다. 밥이 먹고 싶을 때면뚝딱 밥을 차려 먹으면 되고, 문득 계란빵이 먹고 싶을 때는 집 앞에서 파는 계란빵을 사먹으면 되고, 오랜만에 커피맛 아이스크림콘이 먹고 싶으면 5분 거리에 있는 동네 슈퍼에 달려가 사 먹으면 되니까. 무엇을 먹고 싶은가 하는 것은 분명히 나의 의지이고, 또한 집을 잘 뒤져보면 동전 몇 개 쯤은 금방 구할 수 있기 때문에 금세 원하는 것을 사 먹을 수가 있다. 먹는 일 만큼은 철저히 주체적으로, 자신의 의지와 통제와 선택 하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수동성과 무목적성으로 가득 찬 답답한 일상때문에 그렇게 먹는 것에 집착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더 이상은 억지로 무언가에 떠밀려 살아가기를 멈추고, 꾸역꾸역 뭔가를 내 안에 채워넣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서, 의지와 상관없이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을 잠시 멈추고 싶다. 몸도 마음도 텅 비운채로 가만히 오직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깃털처럼 자유롭게 부유할 수 있는 시간이 간절히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