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걸연습 중에서
어떤 부인이 지나갔다. 우리가 손을 내밀자, 그녀는 멈춰서서 말했다.
─구걸하는 게 부끄럽지 않니? 우리집으로 가자, 너희들한테 시킬 일거리가 있어. 나무를 베고, 베란다 청소를 하고. 너희들은 그 정도 일은 충분히 하겠구나. 일을 잘 하면, 내가 수프와 빵을 주마.
우리는 대답했다.
─우리는 부인을 위해 일하고 싶지 않아요 부인. 우리는 부인의 수프와 빵을 먹고 싶지 않아요. 배고프지 않거든요.
그녀가 물었다.
─그런데 왜 구걸을 하지?
─구걸하는 기분이 어떤지 그리고 사람들 반응은 어떤지 관찰하기 위해서예요.
그녀는 소리지르며 가버렸다.
─더러운 자식들 같으니라고! 건방지게시리!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 사과랑 과자, 초콜릿, 동전 등을 강가 풀숲에 던져버렸다.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것은 버릴 도리가 없었다.
우리 엄마 중에서
폭발 직후 우리는 엄마가 땅에 쓰러진 것을 보았다. 장교는 엄마를 향해 달려왔다. 할머니는 우리를 물러나게 하려고 소리쳤다.
─보지 마! 집으로 들어가!
장교는 욕설을 퍼부으며 지프로 뛰어가더니 소리도 요란하게 떠나버렸다.
우리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배에서 창자가 터져나왔다. 온 몸이 피투성이였다. 아기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의 머리는 포탄으로 팬 구덩이 속에 늘어져 있었다.
두 눈은 뜬 채 아직도 눈물에 젖어 있었다.
할머니가 말했다.
─삽을 갖고 오렴!
우리는 구덩이 한가운데에 모포 한 장을 깔고 그 위에 엄마를 눕혔다. 아기는 엄마의 가슴에 여전히 붙어 있었다. 우리는 시체 위에 모포 한 장을 다시 덮고 구덩이를 메웠다.
사촌 누이가 시내에서 돌아와서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니?
우리가 말했다.
─응, 포탄이 터져서 뜰에 구덩이가 생겼어.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최강희의 야간비행에서
이이언이 언급하는 걸 메모해두었다가 읽게 되었다.
상, 중, 하 각각이 서로 반전에 반전을 더해가는 구조로 된 책이다.
이야기의 '진실'은 최종적으로 하권에서 밝혀지지만,
독자는 얼마든지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된다.
소설 속에서 전쟁이라는 상황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은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다고 믿어지는 인간성이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인간다움이란 인간의 짐승적이고 비극적인 본능에 맞서기 위해 학습된 것인지
의문을 갖게 만든다.
아무튼 오랜만에 재미있게 읽은 책이었다.
문장의 호흡이 짧은 덕분에 순식간에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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