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는 야자를 땡땡이치거나 수업 시간에 정신을 놓고 졸거나
하루 중에 단 몇 시간만 한량 같이 보내도 사정없이 혼이 났다.
그런데 대학에 오고 나니 아무도 질책해주지 않는다, 이렇게 한심하게 살고 있는데.
문득 그게 참 무서운 거라는 생각이 든다.
22살, 사실은 생일이 빠른 21살(왠지 억울한 느낌이 들어서 사족을 다는건 그만큼 내가 방어적이라는 얘기겠지만) 아무튼 22살이 2달 정도 남은 이 시점까지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중이라고 무비판적으로 생각해오고 있었다. 심지어 정신적으로 제법 더 성숙해'졌다'는 착각에 빠져있었다. 허세스러운 생각, 현실 도피적인 상상, 얕은 성찰들이나 끄적거리고 있었을 뿐이었으면서, 가소롭게 그렇게 믿었다. 사실은 그저 주변 일들의 흐름에 따라 아무런 의식도 없이 둥둥 떠밀려 가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오늘 인터넷으로 어떤 동갑인 사람을 알게 되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같은 학과 애였다.
걔는 진짜 고민을 하면서, 진짜로 열심히, 진정으로 바쁜 삶을 살고 있었다. 덕분에 내가 얼마나 한심하게 지내고 있는지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비참해서 속이 울렁거릴만큼 절실하게.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닥치는 대로 부딪히고, 정보를 얻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기엔 겁이 난다. 그러기엔 대한민국의 평범(보다 좀 더 열악)한 가정의 대학 3학년 학생에게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라고, 피로함만 남기게 될 괜한 발버둥을 치지 말라고 주변인들과 미디어와 사회 시스템과 고도자본주의와 온 세상이 충고하고 있는 마당이니까. 게다가 나는 참 못말리는 의지 박약에 육욕만 넘치는 사람이다.
고로
과연 이런 반성이 실제적으로 어떤 작은 변화라도 일으킬 수 있을까. 또 무의미한 자책으로 끝나버리겠지 싶기도 하다. 아무튼 확실한건,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다고 기만에 빠져있었던 나는 사실은 나태함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 격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거다.
조금은 덜 부끄럽기 위해서 발버둥이라도 열심히 쳐봐야겠다.
제자리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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