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하루의 시작이 늦어졌다는 데에서부터 우울은 시작되었다. 점심을 먹고 학교에 도착한 시간은 대략 오후 두시.
학교 입구에서 버스를 탔고 좌석에 앉아 벽에 머리를 쿵쿵 박으며 졸다가 문득 눈을 떠보니 이미 내릴 정류장을 한참 지나버린 후였다.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 한참 걸어서 4호선을 탔다. 타자마자 자리가 보이길래 얼른 앉았는데 막상 앉고 보니 왼쪽에는 몇 달동안 씻지 않은 듯한 거지가 오른쪽에는 신발을 벗은 스타킹 안에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피곤했기 때문에 코를 막고 버틸까 싶었지만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내내 서서 갔다. 인간과 인간의 삶의 격차, 개인주의적 삶의 방식의 지당함 이란 문제를 몸소 체험하면서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노원역에 도착해서 백화점에 수선할 가방을 맡기고 2층의 여성 의류 매장을 천천히 돌아보는 동안 우울함은 더욱 심해졌다. 아직 겨울 옷을 집에서 챙겨오지 못한 터라 대충 반팔티에 가디건을 몇 개 껴입고 유난히 볼품없는 꼬락서니로 서있는 내 모습과 최대한으로 완벽하게 꾸민 화장과 값비싼 옷으로 자기를 무장시킨 채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너무도 분명하게 그 채도가 달랐다. 요즘 내가 신림동 고시촌의 풍경에, 그 분위기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화려하고 비싼 브랜드의 옷과 구두를 아무 근심 없는 표정으로 시크하게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팔뚝에는 여러 매장의 쇼핑백들을 몇 개씩 끼운 채 걸어다니는 사람들과 이렇게나 이질감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오랜만에 들른 노원 마니아에서는 앞머리를 최악으로 잘라 놓았다. 그동안 겨우 신경써서 길러 놓은 턱선 쪽 옆머리까지 몽땅 잘라놓아서 다시 이전만큼 기르려면 2년은 걸리게 생겼다. 머리를 자른 느끼하고 못생긴 미용사도 구역질이 났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구역질이 났다. 노원에서 엄마를 만나 저녁을 먹는 중에 용돈을 받았는데 엄마도 힘든 형편임을 알면서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돈을 주머니에 챙겨넣었고 이런 금전적 피드가 당연한 어머니의 '도리'인양 여겼던거다. 그러면서 다음주 엄마와 친구들의 생일선물에 얼마를 쏟을지 머리를 굴리며 못마땅해하기까지.
하지만 무엇보다도, 오늘의 최악은 한 순간도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거겠지 결국 다음주에 리포트와 발표를 모조리 해치워야 하게 생겼다.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꾸역꾸역 부른 배에 밀가루 음식을 밀어넣었더니 로켓처럼 솟아오른 혈당이 점점 내려가면서 기분은 땅 속으로까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런데 이런 우울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최대한 호되게 내 자신을 채찍질하고 의도한 혹은 의도되지 않았던 오늘의 사건들을 객관적인 시선에서 엄격하게 채점해서 고쳐야 할 점, 혹은 세상에 대해 삶에 대해 느끼게 된 점을 꼼꼼히 피드백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