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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이어지는 빚을 갚다가 모든 걸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나의 가족을 내다 버리고 싶었다.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엉뚱한 역에 내렸고, 난생 처음 동작대교를 걸으며 나에게 가족을 버릴 만한 결단력이 있는지 고심했다. 우리가 가족으로 맺어져 있는게 슬프고 한스러웠다. 그러나 다시 태어나더라도 부모와 전혀 모르는 사이가 되고 싶진 않았다. 서로를 아예 모르는 채로 살아가는 삶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가족으로 만나, 이번엔 돈이 아주 많은 가족으로 만나 서로에게 든든하고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주고 싶었다. 돈이 많으면 그런 가족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가족은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으니까. 돈 떄문에 서로를 불신하고 불편하게 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 울었다. 다시 태어나도 나의 가족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게 너무 싫어서 울었다. 돈 많은 가족. 돈 많은. 그 단순하고 편협한 수식어를 원한다는 게 웃기면서도 슬펐다. 그러나 내 마음을 확인한 이상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돌아가 다시 엄마와 아버지의 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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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면서 왜 속옷을 챙겨왔나. 왜 불꽃놀이 세트를 잔뜩 사왔나. 엄마와 바다를 보러 가서 회를 먹어야지 결심하고, 소주도 나눠 마셔야지 생각하고. 혹시 엄마가 울면 불꽃놀이 하자고 말하면서 달래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이렇게 많이 샀다.
엄마는 내가 건넨 30연발짜리 폭죽을 손에 들고 하늘을 향해 곧게 쏘아 올렸다. 그것은 힘차게 솟아올라 허공에서 팡 터졌다가 빛나는 튀밥처럼 빛을 뿌리며 검은 파도 위로 추락했다. 기대했던 선명한 아름다움과 찰나의 폭발력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엄마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었고, 나도 싱겁게 웃었다.
우리에겐 아직 폭죽이 많이 남아 있었다. 팡 터뜨리고, 와아 감탄하고, 피시식 사라질 폭죽이 100발 넘게 남아 있었다. 엄마의 손에 불붙은 폭죽을 건네주며 나는 이 순간을 엄마가 영원히 기억하길 바랐다. 우리가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그날에도. 찬란하게 떠올라 이내 어두운 바다 속으로 녹아 사라지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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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수, <엄마를 절에 버리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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