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쾌락과 고통의 이중주
-
우리는 모두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어떤 사람은 약물을 복용하고, 어떤 사람은 방에 숨어서 넷플릭스를 몰아본다. 또 어떤 사람은 밤새 로맨스 소설을 읽는다. 우리는 자신으로부터 관심을 돌리기 위해 거의 뭐든지 하려 든다. 하지만 자신을 고통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이 모든 회피 시도는 고통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
신경과학자들은 도파민의 발견과 더불어, 쾌락과 고통이 뇌의 같은 영역에서 처리되며 대립의 메커니즘을 통해 기능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쉽게 말해 쾌락과 고통은 저울의 서로 맞은편에 놓인 추처럼 작동한다.우리의 뇌에 저울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중간에 지렛대 받침이 있는 저울이다. 평소에는 저울 위에 아무것도 없으면 지면과 수평을 이룬다. 우리가 쾌락을 경험할 때, 도파민은 우리의 보상 경로에 분비되고 저울은 쾌락 쪽으로 기울어진다. 우리의 저울이 더 많이, 더 빨리 기울어질수록, 우리는 더 많은 쾌락을 느낀다.
하지만 저울에 관한 중요한 속성이 하나 있다. 저울은 수평 상태, 즉 평형equilibrium을 유지하려고 한다. 한쪽이나 다른 한쪽으로 오랫동안 기울어져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울이 쾌락 쪽으로 기울어질 때마다, 저울을 다시 수평 상태로 돌리려는 강력한 자기 조정 메커니즘self-regulating mechanism이 작동한다. 이러한 자기 조정 메커니즘은 의식적 사고나 별도의 의지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저 반사 작용처럼 균형을 잡으려 한다.
나는 이러한 자기 조절 시스템을 그렘린gremlin들이 쾌락 쪽의 무게를 상쇄하기 위해 저울의 고통 쪽에 올라타는 모습으로 상상하곤 한다. 그렘린들은 어떤 생물체가 생리적 평형을 유지하려는 경향, 다시 말해 항상성homeostasis을 대변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쾌락 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이 반작용으로 수평이 되고 나면 거기서 멈추지 않고 쾌락으로 얻은 만큼의 무게가 반대쪽으로 실려 저울이 고통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
쾌락 이후에 찾아오는 갈망은 누구나 겪는 경험이다. 감자칩에 다시 손을 대든 비디오 게임을 한 판 더 하려고 클릭하든, 그런 좋은 느낌을 다시 갖고 싶어 하거나 간직하려고 노력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이다. 이 욕구를 해결하는 손쉬운 방법은 계속 먹거나 놀거나 보거나 읽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어떤 쾌락 자극에 동일하게 혹은 비슷하게 반복해서 노출되면, 초기의 쾌락 편향은 갈수록 약해지고 짧아진다. 반면 이후 반응, 즉 고통 쪽으로 나타나는 반응은 갈수록 강하고 길어진다. 과학자들은 이 과정을 신경 적응neuroadaptation이라 부른다. 다시 말해, 쾌락을 추구할수록 우리는 이와 동일한 효과를 얻기 위해 앞서 선택한 쾌락을 더 많이 필요로 하게 된다. 쾌락을 느끼기 위해 중독 대상을 더 필요로 하거나 같은 자극에도 쾌락을 덜 경험하게 되는 것을 내성tolerance이라고 한다. 내성은 중독의 발생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다.
오랫동안 과도하게 중독 대상에 기대면, 쾌락-고통 저울은 결국 고통 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우리의 쾌락 경험 능력이 떨어지고 고통에 대한 취약성이 높아지면 우리의 향락적(쾌락) 설정값도 바뀐다. 이것을 공기 팽창식 매트리스와 휴대용 바비큐 그릴을 갖춘 그렘린이 저울의 고통 쪽에 진을 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볼 수 있다.
-
고통 쪽으로 기울어진 쾌락-고통 저울은 앞서 상당한 절제 기간을 거친 사람들도 다시 중독에 빠지게 만든다. 왜 그럴까? 우리의 저울이 고통 쪽으로 기울어 있으면, 그저 평범한 기분(수평 상태)을 느끼려 해도 중독 대상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신경과학자 조지 쿱George Koob은 이러한 현상을 “불쾌감에 따른 재발dysphoria driven relapse”이라고 표현한다. 중독 대상에 과거와 같이 다시 의존하게 되는 이유는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랜 금단에 따른 신체적, 심리적 고통을 완화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물론 희망적인 소식은 있다. 우리가 오랫동안 충분히 기다리면, 우리의 뇌는 중독 대상이 없는 상황에 다시 적응하고 항상성의 기준치를 정상 수준으로 되돌린다. 저울이 수평을 이루는 셈이다. 뇌의 저울이 수평을 이루면, 우리는 산책하기, 해돋이 구경하기, 친구들과 식사 즐기기 등 일상의 단순한 보상에서 다시 쾌락을 맛볼 수 있다.
-
중독 대상에 다시 노출되는 경우뿐 아니라 그 대상을 떠올리게 하는 단서 또는 암시에 노출되는 경우에도 쾌락-고통 저울은 요동친다.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Alcoholics Anonymous(이하 AA)’* 모임에서 이 현상을 표현하는 캐치프레이즈는 사람, 장소, 사물people, places, and things이다. 신경과학계에서는 이것을 단서 의존 학습cue-dependent learning이라 부르며, 고전적 (파블로프식) 조건 형성classical Pavlovian conditioning이라고도 한다.
-
단서로 인해 발생한 욕구는 우리의 쾌락-고통 저울을 어떻게 움직일까? 저울은 앞으로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에 쾌락 쪽으로 기울어지는데(도파민 소폭 증가), 곧 단서의 여파 때문에 고통 쪽으로 기운다(도파민 소량 부족). 도파민 부족해지면 우리 뇌는 중독 대상을 찾으려는 행동을 유도한다.
-
과학자들이 그 쥐들의 뇌를 살펴본 결과, 쥐의 보상 경로에서 지속적인 코카인 감작과 일치하는 코카인 유도 변화가 확인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코카인 같은 중독성 물질이 뇌를 영원히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알코올부터 오피오이드, 대마초에 이르기까지 다른 중독 물질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인간이라고 다를까? 상담을 하면서 나는 심각한 중독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수년 동안 의존을 멈추고도 단 한 번의 노출로 다시 강박적인 의존에 빠진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아왔다.
-
인간은 궁극적인 추구자다. 쾌락을 좇고 고통을 피하는 세상의 시험에 너무나 잘 대응해 왔다. 그 결과 우리는 이 세상을 결핍의 공간에서 지나치게 풍족한 공간으로 바꿔 놓았다.
그러나 우리의 뇌는 이 풍요로운 세상에 맞게 진화하지 않았다. 만성적인 좌식 식사 환경에서의 당뇨병을 연구한 톰 피누케인Tom Finucane 박사는 이를 두고 “인간은 열대우림의 선인장입니다”라고 말했다. 건조기후에 살아가는 선인장이 열대우림에 던져진 것처럼 우리는 과도한 도파민에 둘러싸인 환경에 살고 있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우리는 더 많은 보상을 얻어야 쾌감을 느끼고, 상처가 덜하더라도 고통을 느낀다.
-
나는 로맨스 소설에 대한 집착을 버렸을 때 처음 몇 주 동안 실존적 공포에 시달렸다. 보통 밤에는 책이나 다른 오락거리에 빠져 있었는데, 그 시간에 두 손을 배 위에 포개 놓고 소파 위에 누워 쉬려다가 두려움만 잔뜩 느끼게 되었다. 내 평범한 일상에서 그렇게 사소해 보이는 변화 하나가 그토록 심한 불안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연습을 계속하면서 내 정신적 경계가 점차 느슨해지고 의식의 문이 열리는 경험을 했다. 현재의 순간으로부터 나 자신을 계속 벗어나게 할 필요가 없음을, 그 안에 살면서 그것을 견딜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그 이상도 말이다.
2. DOPAMIN :
나와 중독을 이해하는 7단계
-
DOPAMINE의 d는 데이터data를 가리킨다.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먼저 단순한 사실들을 모으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
DOPAMINE의 o는 목적objectives을 가리킨다. 이성적이지 않아 보이는 행동에도 나름의 논리와 근거가 있다. 사람들은 온갖 이유로 고도의 도파민을 야기하는 물질과 행동에 의지한다. 재미를 얻으려고, 어울리려고, 심심풀이로, 공포, 분노, 불안, 불면증, 우울증, 부주의함, 고통, 대인기피증을 없애려고… 목록은 끝이 없다.
-
DOPAMINE의 p는 사용에 관한 문제problems를 가리킨다. 고도의 도파민을 야기하는 중독 대상은 언제나 문제를 일으킨다. 건강 문제, 관계의 문제, 도덕적 문제.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결국에는 문제가 일어난다.
-
DOPAMINE에서 a는 절제abstinence를 가리킨다. 절제는 항상성, 그리고 이를 통해 상대적으로 덜 강한 보상에서 쾌락을 얻는 능력을 회복하는 데 필요하다. 또한 중독 대상을 사용하는 것과 느끼는 방식 사이의 진정한 인과 관계를 파악하는 데 필요하다. 쾌락-고통 저울에 빗대어 얘기하자면, 도파민을 끊으면 그렘린들이 저울에서 뛰어내리고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국 저울이 수평 위치로 돌아오게 된다.
그렇게 멈춰서 뇌가 얻는 이익을 경험하려면 얼마나 오랫동안 참아야 하는 걸까?
신경과학자 노라 볼코프가 진행한 영상 연구로 돌아가 보자. 도파민 전달 수치는 약물을 끊은 지 2주가 지난 상태에서도 보통 수준을 밑돌았다. 그녀의 연구는 2주간의 절제로는 부족하다는 내 임상 경험과 일치한다. 환자들은 보통 2주 동안 계속 금단 증상을 앓는다. 도파민 부족 상태에 있는 셈이다.
반면에 4주는 일반적으로 충분한 시간이다. 마크 셔킷Marc Schuckit과 그의 동료들은 매일 술을 과음하고 주요 우울 장애major depressive disorder라 불리는 질환 혹은 임상 우울증의 기준에 맞는 일군의 남성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의 생물학적 아들이 알코올 사용 장애를 겪을 유전적 위험도는, 이러한 유전적 부하genetic load와 무관한 사람의 위험도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밝혀낸 학자다.) 셔킷의 연구에서 우울증을 앓은 이들은 4주 동안 병원에 입원했는데, 이 기간에 금주를 제외하고는 우울증에 대한 아무런 조치도 받지 않았다. 금주 1달 뒤 80퍼센트가 임상 우울증의 기준에서 벗어났다.
-
DOPAMINE에서 m은 마음챙김mindfulness을 가리킨다. 간단히 말해서 마음챙김은 우리의 뇌가 뭔가를 하는 동안 뭘 하고 있는지를 재지 않고 관찰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마음챙김을 실천하는 것은 우리 은하를 관찰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것은 우리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우리와 동떨어진 동시에 우리의 일부가 되어 바라보도록 하기 때문이다.
마음챙김은 절제의 초기 단계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 중 다수는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고도의 도파민 물질과 행동에 기댄다. 그러나 중독 대상에서 탈피하려고 도파민 사용을 멈추면 처음엔 고통스러운 생각, 감정, 감각 들이 몰려든다. 이때 고통스러운 감정에서 벗어나려 하지 말고 이를 인내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이 마음챙김의 가르침이다. 이렇게 할 때 우리의 경험은 새롭고 예기치 못한 다채로운 조화를 만들어낸다. 고통은 계속 그 자리에 있지만 다양하게 변화하고, 결국 자기만의 고통으로 남는 게 아니라 모두의 고통을 대승적으로 아우르게 한다.
-
DOPAMINE에서 i는 통찰insight을 가리킨다. 자신의 중독 대상을 최소 4주간 멀리하는 간단한 연습으로 자기 행동을 명확히 통찰하는 결과를 나는 임상 치료와 내 삶 속에서 줄곧 확인했다. 우리가 중독 대상에 계속 의존하는 동안에는 통찰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
DOPAMINE의 n은 다음 단계next steps를 가리킨다. 나는 환자들에게 절제하는 한 달을 보낸 후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묻는다. 이때 환자 대다수는 자신이 한 달 동안 절제에 성공하고 절제의 이점을 경험할 수 있음에도 다시 중독 대상에 기대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에 기대던 것과 다르게 기대고 싶어 한다.
-
DOPAMINE에서 마지막 글자 e는 실험experiment을 가리킨다. 여기까지 온 환자들은 새로운 도파민 설정값(수평 상태의 쾌락-고통 저울)을 유지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지 함께 전략을 짠다. 그리고 시행착오를 겪어나가면서 무엇이 통하고 무엇이 통하지 않는지를 알아낸다.
3. 자기 구속 :
중독 관리를 위한 3가지 접근법
-
자기 구속self-binding은 제이콥이 자신의 기계를 버리는 행위를 표현하는 용어다. 우리가 강박적 과용을 완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신과 중독 대상 사이에 장벽을 만드는 방법이 바로 자기 구속이다. 여기선 개인적 동인이 일부 역할을 하지만 의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자기 구속은 의지의 한계를 명확히 인정하는 전략이다. 효과적인 자기 구속을 실천하기 위한 열쇠는, 먼저 우리가 강력한 강박의 마법 아래서 경험하는 자발성의 결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여전히 갖고 있을 때 자신을 구속하는 것이다.
자기 구속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물리적 전략(공간), 순차적 전략(시간), 범주적 전략(의미).
물리적 자기 구속은 중독의 대상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그 쓰레기통마저 버리는 것이다.
자기 구속의 또 다른 형태는 시간 제한과 결승선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일 단위, 주 단위, 월 단위, 연 단위 등으로 기준을 잡아 일정 기간으로 접근을 제한함으로써 시간적 기회를 줄이고 사용에 한계를 둘 수 있다. 예를 들어 휴일에만 쓸 거야, 주말에만 쓸 거야, 목요일 전에는 절대 안 쓸 거야, 오후 5시 전에는 절대 안 쓸 거야 하면서 다짐하는 식이다. 또는 시간 자체보다는 중요한 사건이나 목표 달성을 기준으로 자신을 구속할 수도 있다. 생일 때까지, 아니면 과제를 마치자마자, 아니면 학위를 딴 후, 아니면 승진을 할 때까지 기다린다. 시계가 멈출 때, 아니면 스스로 정한 결승선을 지날 때야만 보상받는 식으로 설계해도 좋다.
요즘은 사방에서 도파민이 넘쳐난다. 그래서 우리는 즉각적인 만족에 길들어져 있다. 우리가 뭔가를 사고 싶으면, 그다음 날 문간에 그게 떡 하니 놓여 있다. 우리가 뭔가를 알고 싶으면, 곧바로 화면에 답이 나타난다. 결국 우리는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해서 알아내거나, 답을 찾는 동안 좌절하거나, 자신이 바라는 걸 기다려야 하는 습관을 잃고 있다.
범주적 자기 구속은 도파민을 여러 범주로 나누어 사용을 제한하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자신에게 허락하는 하위 유형, 그리고 허락하지 않는 하위 유형으로 나누는 것이다. 이는 중독 대상뿐 아니라 그 대상을 갈구하게 만드는 계기도 금지하는 방식이다.
4-1. 탐닉의 시대에서 균형 찾기 :
고통 마주보기
-
얼음물 입욕의 이점을 우연히 발견한 마이클의 사례는 저울의 고통 쪽을 누르는 게 어떻게 반대쪽의 결과를 이끌어내는지를 보여준다. 쾌락 쪽을 누르는 것과 다르게, 고통이 야기한 도파민은 간접적이고 어쩌면 더 오래 지속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
고통은 몸 자체의 조절 항상성 메커니즘을 건드려 쾌락을 이끌어낸다. 우리가 느끼는 쾌락은 고통에 대한 우리 몸의 자연스럽고 반사적인 생리 반응이다.
고통이 우리가 쾌락에 지불하는 대가인 것처럼, 쾌락 역시 우리가 고통을 통해 얻는 보상이다.
-
설치류와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간헐적 단식과 칼로리 제한은 혈압을 줄이고 심박 변이를 높였을 뿐 아니라 수명을 늘리고 노화와 질병에 대한 저항력까지 높인 것으로 관찰됐다. 대중적으로 간헐적 단식은 체중을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으로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
운동은 세포에 유독한 영향을 미쳐서 체온 상승, 유해 산화제 생성, 산소 및 포도당 부족을 일으킨다. 하지만 운동이 건강을 좋게 만든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운동 부족이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증거는 반박 불가하다. 운동은 도파민,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에피네프린, 엔도카나비노이드, 내인성 오피오이드 펩티드(엔돌핀) 등 긍정적인 기분 조절과 관련된 다수의 신경전달 물질을 증가시킨다. 또한 새로운 뉴런을 만들고 신경아교세포를 유지하는 역할도 한다. 더 나아가 약물에 중독될 가능성을 낮추기까지 한다.
-
웰빙을 위해선 침상에서 벗어나 가상의 몸이 아닌 진짜 몸을 움직여야 한다. 내가 내 환자들에게 늘 얘기하지만, 하루에 30분 동네를 걷는 것만으로도 차이를 만들 수 있다. 즉 운동은 내가 처방할 수 있는 그 어떤 알약보다 기분, 불안, 인지, 활기, 수면에 더 깊고 일관성 있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다.
-
하지만 고통 추구는 쾌락 추구보다 어렵다.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좇는 것은 인간의 천성이다. 나는 억지로 침대에서 빠져나와 운동하러 가는 아침마다 고통의 교훈을 되새기려한다(고통 끝에 쾌락이 온다!). 하지만 이것은 매일의 도전이지 결코 기쁨은 못된다.
쾌락 대신 고통을 좇는 것은 반문화적인 행동이기도 하다. 현대 생활의 수많은 측면에 만연해 있는 기분 좋은 메시지에 반하는 일이다. 부처는 고통과 쾌락 사이에 중도를 찾으라고 가르쳤지만, 중도조차 “편익의 횡포” 탓에 퇴색하고 말았다. 따라서 우리는 고통을 찾아내어 삶에 끌어들여야 한다.
-
호널드의 뇌가 로프 없이 암벽을 타는 데 적응했듯이, 데이비드는 불안을 견디게 하는 정신적 굳은살을 만들어서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는 내게 바꾸고 싶은 행동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의 온화한 태도는 내 마음의 문을 열게 했다. 놀랍게도 나는 늦은 밤 소설을 읽는 이야기를 감정을 누그러뜨린 채 말하기 시작했다. 다만 내가 읽는 책이나 문제의 크기에 대해선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저는 밤늦게까지 책을 읽어요. 그게 수면을 방해하죠. 그 부분을 바꾸고 싶어요.” 말하자마자 내가 밤늦게까지 책을 읽고 그 행동을 바꾸고 싶어 한다는 게 모두 사실임을 깨달았다. 그 순간까지도 무엇 하나 확실하게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왜 바꾸고 싶으시죠?” 그는 동기 강화 상담법motivational interviewing의 표준 질문을 활용해 질문했다. 동기 강화 상담법은 임상 심리학자인 윌리엄 R. 밀러William R. Miller와 스티븐 롤닉Stephen Rollnick이 내적 동기를 살피고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한 상담 접근법이다.
“저는 일과 자녀 양육을 잘하고 싶은데, 그걸 방해하거든요.” 내가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이유 같네요.” 그가 맞았다. 좋은 이유들이었다. 나는 그 이유들을 소리 내어 말하면서 내 행동이 내 생활과 내가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처음 깨달았다.
이어서 그가 물었다. “그 행동을 멈춘다면 무엇을 포기하게 되나요?”
“독서를 통해 얻는 즐거움을 포기하게 될 거예요. 제가 현실에서 벗어나기를 좋아하거든요.” 나는 바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 느낌이 저의 가족과 일만큼 중요하진 않아요.” 다시금 나는 소리 내어 말하면서 그것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나는 나를 위한 즐거움보다 내 가족과 내 일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고, 내 가치관에 따라 살기 위해선 강박적이고 현실 도피적인 독서를 멈출 필요가 있었다.
“그 행동을 바꾸기 위해 당신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무엇인가요?”
“전자책 단말기를 없앨 수 있어요. 책을 싼 가격으로 쉽게 볼 수 있다 보니 밤늦게까지 책을 읽기 쉽거든요.” “좋은 생각 같네요.” 그는 이렇게 말하고 미소를 지었다. 내 환자 역할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다음 날, 나는 어제의 대화를 계속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달에 로맨스 소설 읽기를 멈추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먼저 전자책 단말기를 없앴다. 그러고는 2주 동안 불안과 불면을 비롯한 금단 증상을 겪었다. 내가 보통 책을 읽는 시간인 취침 전 밤 시간에 특히 그랬다. 알아서 잠드는 방법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달 말이 되니 기분이 괜찮아졌고, 상대적으로 적당량의 독서를 계획하면서 적절한 로맨스 소설을 읽어 보았다. 그러자 예전의 나쁜 습관이 힘을 발휘해 이틀 연속으로 밤늦도록 성애물에 탐닉했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강박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패턴으로—바라볼 수 있었다. 그 행동을 완전히 멈춰야겠다는 결의가 점차 커졌고 마침내 행동으로 옮겼다. 나의 백일몽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4-2. 탐닉의 시대에서 균형 찾기 :
있는 그대로 말하기
-
근본적인 솔직함은—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 특히 자신의 결점을 노출하고 어떠한 결과를 감수하면서 있는 그대로 말하기는—중독에서 벗어나는 데 필수적일 뿐 아니라 균형 잡힌 인생을 살아가려는 이들에게 중요한 전략이다. 사실대로 말하기는 여러모로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
오디세우스 신화는 행동 변화의 중요한 부분을 보여준다. 경험을 언어로 표현하면 그 경험에 숙달할 수 있다. 정신 치료의 맥락에서든, AA 후원자에게 털어놓든,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든, 친구에게 비밀을 얘기하든, 일기를 쓰든, 솔직하게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행동이 정리되고, 그 행동을 이해하게 된다. 행동이 의식적 인식 밖에서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땐 특히 그렇다.
-
솔직함을 훈련하면 특정 목적을 위한 신경 회로가 강화될 수 있음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이는 외국어 배우기, 피아노 연주하기, 혹은 스도쿠 잘하기가 다른 회로를 강화하는 방식과 동일하다. 사실대로 말하기는 뇌를 변화시킨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쾌락-고통 균형과 강박적 과용을 이끄는 정신적 작용을 더 확실히 의식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의 행동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컷Donald Winnicott은 1960년대에 ‘거짓 자기the false self’라는 개념6을 도입했다. 위니컷에 따르면, 거짓 자기는 참기 힘든 외적 요구와 스트레스 요인을 막기 위해 스스로 만든 페르소나다. 위니컷은 거짓 자기를 만들면 깊은 공허감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곳엔 그곳이 없는 셈이다. 소셜 미디어는 거짓 자아가 넘쳐나는 곳이다. 우리로 하여금 거짓 자기를 훨씬 더 쉽게 만들 수 있게 했고, 우리 삶을 현실과 동떨어진 서사로 관리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
주변 사람들이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세상과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기대를 갖게 된다. 세상이 질서 있고 예측 가능하며 안전한 곳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무언가 부족하더라도 상황이 괜찮아질 거라는 확신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여유 있는 사고방식이다.
반면에 주변 사람들이 거짓말하고 약속도 안 지킬 때, 우리는 미래에 대해 믿음을 잃게 된다. 세상은 질서 있거나, 예측 가능하거나, 안전한 곳이 될 거라고 기대할 수 없는 위험한 곳이 된다. 우리는 경쟁적인 생존 모드로 들어가 장기간의 이득보다 당장의 이득을 선택하게 된다. 이것이 결핍의 사고방식이다.
-
왜 수많은 이들이 부유한 국가에서 풍요로운 물질 자원과 함께 살면서도 결핍의 마음가짐을 갖고 매일을 살아가는 걸까?
앞서 확인한 것처럼 너무 많은 부는 문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도파민 과부하는 보상을 미루는 능력을 저하시킨다. 소셜 미디어의 과장과 ‘탈진실’의 정치(있는 그대로 표현하자면 거짓말하기)는 우리의 결핍감을 키운다. 그 결과 우리는 풍요 속에 있으면서도 빈곤함을 느낀다.
여유 속에서 결핍의 마음가짐이 생겨나는 것처럼, 결핍 속에서도 여유 있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다. 심리적 여유는 물질세계 너머의 원천에서 비롯된다. 우리 바깥의 무언가를 믿거나 그것을 위해 매진하는 자세, 그리고 인간적인 유대감과 의미로 가득한 삶을 만드려는 노력은 비록 가난에 처해 있더라도 우리에게 여유 있는 마음가짐을 갖게 한다.
-
내게 솔직하기란 매일의 도전이다. 내겐 이야기를 살짝 꾸며서 나를 돋보이게 하거나 나의 나쁜 행동을 변명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늘 있다. 그런 충동을 이겨내려고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AA는 책임감과 더불어 엄격한 솔직함을 강조한다. 이 두 가지 요인은 동시에 역할을 한다. AA의 12단계 중 4번째는 회원들에게 “면밀하고 과감한 도덕성 목록 작성”을 요구한다. 그 안에서 개개인은 자기 성격의 단점을 고려하고 그 단점이 어떻게 문제를 일으켰는지를 고려하게 된다.
제5단계는 “고백 단계”다. 여기서 AA 회원들은 “우리가 저지른 잘못의 정확한 본질을 신, 자신, 다른 사람 앞에서 인정한다.” 이 간단하고 현실적이며 체계적인 접근법은 강력한 변화를 이끌어 낸다.
나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있는 그대로 말하기를 계속 실천해 보고 있다. 물론 항상 성공하진 못하고, 본능적으로 남 탓을 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부지런히 시도하고 있다.
4-3. 탐닉의 시대에 균형 찾기 :
나를 살리는 수치심
-
내가 보기에 수치심이냐 죄책감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그 감정을 어떻게 경험하느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위반 행위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상대가 우리에게 거부, 비난, 회피의 감정을 드러내면 우리는 파괴적 수치심destructive shame의 사이클로 들어가게 된다. 파괴적 수치심은 수치심의 감정적 경험을 심화시키고, 처음에 수치심을 느끼게 했던 행동을 완전히 고정시켜 버린다.
반면에 상대가 우리를 더 가까이 두고 구원/회복을 위한 손길을 내민다면 우리는 친사회적 수치심prosocial shame의 사이클로 들어간다. 친사회적 수치심은 수치심의 감정적 경험을 누그러뜨리고, 수치스러운 행동을 멈추거나 줄이도록 도와준다. 자존감도 지켜준다.
-
친사회적 수치심은 수치심이 공동체 번영에 쓸모 있고 중요하다는 생각에 근거를 둔다. 수치심이 없으면 사회는 혼돈에 빠져버릴 것이다. 따라서 관습에 반하는 행동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는 건 적절하고 좋은 경험이다.
더 나아가 친사회적 수치심은 누구나 결점을 가졌고, 실수할 수 있으며, 따라서 용서할 수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근거를 둔다. 옆길로 엇나간 사람을 내치지 않으면서 집단 규범을 고수하도록 하는 열쇠는, 벌충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명시한 수치심 이후의 ‘할 일’ 목록을 만드는 데 있다.
-
진심 어린 자기 검사는 자신의 단점을 더 잘 이해하게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단점을 객관적으로 살피고 반응할 수 있도록 한다. 우리는 자신을 책임져야만 다른 사람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리고 수치스럽게 하지 않으면서도 수치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여기서 열쇠는 동정심이 깃든 책임이다. 이러한 교훈들은 중독 여부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고, 우리 일상생활의 모든 관계에서 활용할 수 있다.
5. 저울의 교훈
누구나 얼마쯤은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쉬고 싶어 한다. 우리가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종종 적용하는 불가능한 기준으로부터 나와 있길 바란다. ‘내가 왜 그랬지? 이걸 왜 못하지? 그 사람들이 나한테 한 짓을 봐. 내가 그걸 그 사람들한테 어떻게 하겠어?’ 그래서 우리는 지금 당장 기댈 수 있는 기분 좋은 도피라면 무엇에든 마음이 간다. 트렌디한 칵테일, 소셜 미디어의 반향실 효과, 리얼리티 쇼 몰아 보기, 밤에 인터넷으로 포르노 보기, 포테이토 칩과 패스트푸드, 몰입형 비디오 게임, 이류 뱀파이어 소설… 목록은 정말 끝이 없다. 중독성 있는 대상과 행동은 우리에게 잠시 휴식이 되지만 길게 보면 우리의 문제를 키운다. 그런데 세상으로부터 도피해 망각의 길을 찾는 대신 세상 쪽으로 방향을 틀면 어떨까? 세상에서 도망가는 대신 세상에 몰입하면 어떨까?
여러분도 주어진 삶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길 바란다. 피하려고 하는 대상으로부터 도망치지 말고, 그 자리에 멈춰서 방향을 바꾸어 그것을 마주하길 바란다. 거기에 다가가길 권한다. 이렇게 하면 세상은 굳이 도망갈 필요 없는 아주 멋지고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로 당신 앞에 나타날 것이다. 세상은 관심을 기울일 가치가 있는 무언가가 될 것이다.
균형을 찾아 유지함으로써 얻어지는 보상은 즉각적이지도 않고 영원하지도 않다. 보상을 얻으려면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앞에 무엇이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기꺼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당장 영양가 없어 보이는 지금의 행동들이 실제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축적되고, 이것이 미래의 언젠가 나타날 거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저울의 교훈
1. 끊임없는 쾌락 추구(그리고 고통 회피)는 고통을 낳는다.
2. 회복은 절제로부터 시작된다.
3. 절제는 뇌의 보상 경로를 다시 제자리에 맞추고, 이를 통해 더 단순한 쾌락에도 기뻐할 수 있도록 한다.
4. 자기 구속은 욕구와 소비 사이에 말 그대로 초인지적 공간을 만드는데, 이 공간은 도파민으로 과부하를 이룬 지금 세상에 꼭 필요한 것이다.
5. 약물 치료는 항상성을 회복시킬 수 있다. 하지만 약물 치료로 고통을 해소함으로써 잃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6. 고통 쪽을 자극하면 우리의 평형 상태는 쾌락 쪽으로 다시 맞춰진다.
7. 그러나 고통에 중독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8. 근본적인 솔직함은 의식을 고취하고, 친밀감을 높이며, 마음가짐을 여유 있게 만든다.
9. 친사회적 수치심은 우리가 인간의 무리에 속해 있음을 확인시킨다.
10.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세상에 몰입함으로써 탈출구를 찾을 수 있다.
- 애나 렘키, <도파미네이션> 중에서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고 싶다는 농담 (0) | 2023.06.16 |
---|---|
책 / 신경 끄기 연습 (0) | 2023.06.16 |
밝은 밤 (0) | 2023.06.08 |
두가지 계율 (0) | 2023.04.02 |
책 / 남자들은 머핀을 싫어해 (0) | 2022.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