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빠를 좋아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정말 그렇다고 덤덤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부모님의 이혼 이후로 나는 아빠랑 동생이랑 셋이서 살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빠는 예전처럼 매일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자주 술을 마셨고
담배를 상당히 많이 피웠고 취하면 나쁜 말을 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더이상 아빠는 사건을 일으키지 않았다.
대신에 조용하고 무기력하고 표정 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나는 아빠가 불쌍하고 안타까웠지만
아빠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대답은 이미 오래전에 정해져 있었다.
점점 나는 아빠를, 내가 '아빠'라고 불러야 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가난을 실감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때 나는 아빠가 '보험'에 가입되어있는지 생각해보기도 했다.
보험금을 동생과 나눠 갖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런 생각에 죄책감이 들지 않게 되어버렸다.
우리는 셋이서 한번도 어디를 놀러가거나 외식을 하러 가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아빠는 단지 표현이 서툰 것 뿐이었다.
그리고 우리 역시 무뚝뚝한 딸들이었던 것이다.)
나는 아빠가 나에게 해주는 것에 감사하기보다 아빠가 나에게 해주지 못하는 것에 화가 냈다.
아빠의 전화가 귀찮고 거북해서 수신 거부로 해두기도 했다.
먼저 안부를 묻거나 말을 걸 때에는, 딸로써 적어도 이 정도는 해두어야
아빠가 나에게 계속 무언가를 제공해 줄 것이라는 그런 이유였다.
오늘 수업이 끝나고 자취 중인 고시원에 가다가 모르는 번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마도 아빠랑 같은 택시 회사에서 운전을 하는 동료분 같았는데
아빠가 점심을 드시고 나오다가 쓰러지셨다고 했다.
병원에 데려가려고 했지만 그냥 집으로 혼자 택시를 타고 가버렸다고
아무래도 걱정이 되서 전화를 했다고 하셨다.
몇 분 뒤에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목소리가 예전보다 더 희미해진 것 같다.
아빠는 그냥 체했을 뿐이니까 잠을 좀 자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나는 과제 때문에 집에 가지 못할 것 같으니까
내일 혼자 꼭 병원에 다녀오라고, 다녀와서 연락달라고 말했다.
통화했던 아빠의 동료에게는 집에 꼭 내려가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애초에 나는 약속을 지킬 마음이 별로 없었다.
아빠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많이 늙고 약해지셨다는 것을 실은 예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무거웠지만 그런데 왠지
슬픔의 농도가 완전하지 않다.
사실 나의 아빠는 유달리 나쁜 아빠는 아닌 것이다.
세상 그 어디에도 '완벽한' 아버지는 없다.
아빠는 단지 자기 한계를 숨기는데 서투른, 여러모로 잘나지 못한 사람일 뿐이다.
어쩌면 내가 종종 아빠를 싫어하게 된 이유를 생각하곤 했던 것은
아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스스로 정당화하기 위해서
구태여 적절한 이유를 찾아내, 스스로의 마음에 선명하게 새겨놓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어쩔 수 없이 나는 아빠를 좋아할 수가 없다.
아무래도 나라는 사람과 아빠라는 사람이 도저히 맞지 않는 류의 사람인 것 같다.
나는 굳이 아빠를 좋아하는 척 연기하지도 않는다.
굳이 좋은 딸이고 싶지 않아서, 착한 딸인 척하기가 불편해서.
그래서 아빠랑 있으면 사정없이 가슴에 못을 박게 되기 때문에, 일부러 아빠에게 거리를 둔다.
하지만 아빠가 이렇게 약해지고, 여위고, 시들어가고 있을 때 상처를 덧붙여드리고 싶진 않다.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지 알지만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후회할 일들을 쌓아올린다.
머리가 무거워 과제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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