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도서관 기담

유연하고단단하게 2020. 8. 3. 20:48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다. 구두를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도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았다. 어머니의 옆모습은 여느 때보다 아주 조금 슬퍼 보였다. 하지만 그건 단지 느낌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이후로 나는 한 번도 도서관에 가지 않는다. 다시 한 번 그곳에 가서 그 지하실 입구를 확인해보고 싶은 기분도 든다. 하지만 나는 이제 거기에는 가까이 가고 싶지 않다. 해질녘에 도서관 건물을 보기만 해도 발이 오그라들어 버리는 것이다.
가끔씩 지하실에 두고 온 새 가죽 구두를 생각한다. 그리고 양 사나이를 생각하고 아름다운 소녀를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나로선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채로 나는 점점 그 지하실로부터 멀어져간다.
지금도 나의 가죽 구두는 지하실 한 구석에 놓여 있고, 양 사나이는 이 지상의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런 생각믈 하는 건 무척 슬프다. 내가 한 일이 정말 옳았는지 어떤지 그것조차도 나로선 확신할 수가 없다.
지난주 화요일,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조용한 장례식이 있었고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나는 지금, 오전 두시의 어둠 속에서 그 도서관 지하실을 생각하고 있다. 어둠 속은 아주 깊다. 마치 초승달의 어둠 같다.


-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 기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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