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사이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느라 요한은 울기도 웃기도 하고 싸우기도 했지만 원망하지는 않았다. 잘못은 사람이 아닌 시간에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날의 '그 순간'과 매 순간 이별함으로써 요한은 자기의 시간을 뉘우쳤고 뉘우침으로써 시간의 근본적인 슬픔을 깨닫고 있었다. 깨달으며 살고 있었다.
시간의 근본적인 슬픔 속에서, '사람'은 비로소 요한의 목적이 된다. 사람을 '그 순간'의 일부로 여기지 않는다면, 사람은 요한의 경험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사람을 목적으로 여기는 것은 도덕이고 '그 순간'을 향하는 것은 예술이다. 시간의 근본적인 슬픔 속에서만, 즉 '그 순간'과의 관계 속에서만 도덕을 아름다움과 동일한 것으로서 획득할 수가 있음을, 사람들 사이에서, 요한은 절감하고 있었다.
- 고진권, <계시, 꽃>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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