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아빠랑 마주보고 저녁을 먹었다

유연하고단단하게 2011. 2. 12. 00:48

 

 

아빠가 차려준 늦은 생일상을 먹었다
끓여놨던 미역국은 니 동생이 다 먹었다, 미안해하시면서
나없던 생일날 동생과 먹고 남았다는 갈비를 구워주셨다.

오랜만에 아빠랑 마주보고 앉아서
작은 식탁을 사이에 둔, 그 만큼의 거리에서야
주름이 깊어진 얼굴
염색이 벗겨져서 드러난 흰머리
특히 이빨이 빠져서 군데군데 휑한 입 속
아름답게 늙지 못하신 그 모습이, 적나라하게 눈에 들어왔다

나는 밥그릇만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묵묵히 숟가락질을 했다.

 

내가 아빠를 제일 미워했었던 그 시기에
아빠는 자신을 위한 삶을 포기하고 딸들을 위해서만 살겠다고 결심하셨고
그런 마음으로 10년을 살아내셨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아빠가 당신 자신을 위해 가지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저 무능력함과 무기력함만을 탓해온 내가 죄송스러웠다.

 

이미 맛도 느낄 수 없게 된 갈비를 꾸역꾸역 씹어 삼키던

그 묵직한 기분을, 희미해지기 전에 가슴에 잘 새겨두었다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헛헛함에 쓰는 헛헛한 일기  (0) 2011.03.18
웹 폰트 색상표  (0) 2011.02.14
parallel world  (0) 2011.02.10
옥상달빛의 '영원 속에' 라이브  (6) 2011.01.31
20110121  (2) 2011.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