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지금도 자세히는 알지 못하는 회사의 어떤 사정(사내 정치 싸움의 작은 나비효과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듯) 때문에 엉뚱한 부서로 옮기게 되면서부터였다. 인사과에서는 해당 분야에 기초적인 지식조차 없어 걱정하는 나에게 첫 두 달은 복잡한 업무들을 차근차근 익히는 일종의 견습 기간일 테니 부담 갖지 말라고 안심시켰지만, 새 부서 새 직속 팀장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첫 주부터 그는 나를 이 부서에서 돌아가는 모든 일을 대충 다 알고 있어야 마땅한 n년 차 경력자쯤으로 대했다. 이름도 처음 듣는 일을 무턱대고 시켜놓고는 머뭇대는 기색이라도 보이면 어떻게 아직 이것도 모르냐고 툴툴대며 알려주는 식이었다. 그마저도 완전치 않아서 자주 밤을 새가며 독학으로 일을 터득해야 했고, 그런 결과물은 대개 완전치 못해서 자주 혼났다. 대체 회사는 무슨 생각으로 너를 승진시켜 이런 중요한 곳에 보낸 건지 이해가 안 간다는 탄식, 그런 월급을 받는 게 미안하지도 않느냐는 비아냥, 그 밖에 내 무능함에 대한 힐난 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건 그의 눈빛이었다. 그는 늘 나를 세상 쓸모없고 성가신 사람 보듯 바라봤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 눈빛들은 차곡차곡 내 눈 안으로도 들어와서 언젠가부터 나도 나를 그렇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때 알았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성가시고 하찮은 존재’로 매일매일 규정되다 보면,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라는 글자는 슬며시 사라지고 그저 ‘성가시고 하찮은 존재’로서의 나만 남는다는 것을. 나에게조차 나는 성가시고 하찮았다. 그렇게 하찮을 수가 없었다.
회사에 온 정신을 빼앗기는 바람에 회사 바깥의 삶도 제때제때 뽑아내지 못한 일상의 잡초들이 마구 자라 정글이 되었고 정글의 법칙 역시 매섭기는 마찬가지였다. 관공서에 들러 처리해야 할 잡일들이 밀리고 밀려 나중에는 엄두도 내지 못할 큰일이 되었고, 번번이 놓친 친구들의 메시지나 전화는 마음의 빚이 되어 쌓였으며, 계절 옷 정리를 하지 못해 여전히 겨울인 옷장은 열어볼 때마다 찬바람이 이는 것처럼 우울했다. 특히 부서 이동 이후 현격히 줄어든 만남의 횟수 때문에 거의 매주 다투곤 했던 애인의 날 선 비난은 내가 나를 미워하는 일을 가속시켰다. 며칠째 잠도 잘 못 잔 나에게 밤새 통화하자거나 어디 놀러 가자는 야속한 제안을 하는 애인을 달래는 일에 지쳐만 갔고, 넌 사람을 너무 외롭고 비참하게 만든다, 넌 늘 사랑보다 일이 먼저다, 넌 평생 절대 연애 같은 걸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같은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난 사랑할 자격도 상실한 것처럼 느껴졌다. 늘 먼저라는 일도 제대로 못 한다는 게 가장 뼈아팠고.
정말이지 일에, 사랑에, 생활에, 모든 것에 무능했다. 눈 닿는 곳마다 나에게서 홱 돌아앉은 등뿐이었다. 그나마 상반기를 버틴 유일한 힘이었던, 생활도 재정비하고 하반기 회사 일도 미리미리 준비해두리라 벼르고 별렀던 여름휴가의 첫날 에어컨이 덜컥 고장 났을 땐 웃음밖에 안 나왔다. 하늘에 대고 소리라도 치고 싶었다. 아 진짜! 나랑 장난해요? 네?
그런 외침에 답이라도 하듯 고장 난 에어컨은 나의 휴가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다가 문득 에어컨의 전 주인인 친구 J는 이 증상을 해결할 쉬운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야, 7월에 메시지를 보냈더니 8월에 답이 오네. 너 좀 살 만하냐?”로 시작한 대화는, 에어컨에 관한 우울한 전망을 거쳐(“그거 무조건 사람 불러야 돼. 근데 지금 접수해도 이삼일은 기다려야 할걸?”), 프리랜서인 J의 집에서 2박 3일을 함께 보내자는 합리적인 해결책에 이르렀다(“야, 우리 집으로 피서 와! 내가 작업실처럼 구조를 바꿔서 우리 집 일도 진짜 잘돼. 오랜만에 올나이트하자!”).
석 달 만에 나를 본 J는 깜짝 놀랐다. 그사이 내 몸에서 4킬로그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마음이 아팠던지 J는 요즘 뭘 잘 먹지 못한다는 나의 만류에도 그날 저녁을 다소 의욕적으로 준비했는데, 그 의욕에 부응하려다가 그만 체하는 바람에 한바탕 손을 따고 꼼짝없이 누웠다. 미안해하는 J에게 내가 더 미안했다. 먹는 것도 제대로 못 해서 친구가 자신의 정성을 후회하게 만들다니. 가는 곳마다 민폐를 전단지처럼 뿌리고 다니는구나, 나는.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자책과 친구 집에 괜히 온 게 아닐까 하는 후회에 휩싸인 채 깜빡 잠이 들었는데…… 그때부터는 잠이 끝도 없이 쏟아졌다. 멈출 수가 없었다, 올이 풀린 스타킹처럼. 한참 자다 깨면 낮이었다가 또 자다 깨면 밤이었다. 이제 그만 자야겠다는 의지로 일어났다가도 J가 갖다 준 죽을 먹고는 또 잤다. 겨우 일어나서 샤워하고 맑은 정신으로 다시 식탁에 앉은 건 사흘째 점심때나 되어서였다.
욕실에 들어가기 전부터 어디 특별히 아픈 데가 있는 건 아닌지 거듭 체크하던 J는 식탁에 마주 앉아서도 최근 몇 주간 평소와 다른 어떤 신체적 증상 같은 건 없었는지, 잠은 보통 몇 시간 자는지, 주량은 여전한지 나름의 문진을 꼼꼼하게 펼치고는 “야, 일단 밥을 먹자!”라며 벌떡 일어섰다. 같이 일어서는 내 앞으로 노트북을 밀어주면서.
“넌 그냥 앉아서 네가 곧 먹을 음식이 얼마나 대단한지나 읽고 있어!”
화면엔 J의 블로그가 띄워져 있었다. 3년 차 블로거인 J가 ‘요리 과정 숏’을 하나하나 찍어 올린 최신 글의 제목은 ‘진짜 미친 사리곰탕면’이었다. 익숙한 라면 봉지가 얼핏 보이는 게,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기성 라면에 추가로 야채며 고기를 듬뿍 넣은 요리일 거라고 예상했다. 블로그 같은 데에서 보는 라면에 꽃게와 해산물을 잔뜩 넣어 끓이거나 짜장라면에 야채들을 추가로 넣고 계란을 얹어 완성한 요리에 가까운 그런 라면. 완벽한 오해였다.
과정 숏의 시작은 뼈였다. 뼈? 사골? 설마 직접 사골을? 그랬다. J는 사골을 물에 담가 몇 시간에 한 번씩 몇 번이나 물을 갈며 열 시간 동안 핏물을 뺐고, 그 사골을 깨끗이 씻은 후, 20시간 넘게 네 차례에 걸쳐 사골국을 우려냈다. 세상에…… 아니 이게 무슨 ‘비빔면’ 만든다면서 대뜸 빨간 고추들 사진으로 시작하더니 그것들을 말리고 가루로 빻아서 고추장을 담근 후 비빔장을 만드는 시추에이션인가. 사골을 처음 우려보는 J가 중간중간 헤맨 것까지 셈하면 육수를 만드는 데에만 거의 이틀이 걸렸다. 미쳤어 진짜. 게다가 가스 불을 켠 채 자는 게 불안해서 타이머를 맞춰놓고 자다 말고 확인하고 자다 말고 확인하느라 J는 이틀간 거의 못 잔 것 같았다. 미쳤어…… 진짜…….
“나 좀 쩔지! 너 이거 먹으면 기운 확 날걸?”
의기양양한 J의 말과 함께 사골 육수에 기존의 라면을 합친 사리곰탕면이 식탁에 놓였다. 뽀얀 국물에 가려 면발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아니, 그 전에 뿌연 눈물에 가려 국물도 흐릿하게 보였다. 이제 와 하는 말인데 솔직히 그날의 맛이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대신 기억나는 건 가게 앞에 쭈그러져 있는 풍선 인형에 바람을 넣으면 팽팽하게 부풀면서 우뚝 서듯 무너져 있던 마음 한구석이 서서히 일어나던 생생한 느낌. 한 입 두 입 계속 먹을 때마다 몸속을 세차게 흐르는 뜨겁고 진한 국물에 심장에 박혀 있던 비난의 가시들이 뽑혀나가는 것 같았다. 마음의 틈새마다 눌어붙어 있던 자괴와 절망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국물이 흘러들어오고 눈물이 흘러나가면서 내 눈에 옮아 있던 날 선 눈빛들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쁜 것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J의 사리곰탕면이 새겨 넣은 메시지는 이랬다. ‘너는 누군가가 이틀을 꼬박 바쳐 요리한 음식을 기꺼이 내어줄 정도로 소중한 존재야. 잊지 마.’ 나를 따라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J와 함께 울며, 그리고 불며 싹 비워낸 한 그릇은 그렇게나 시원했다.
J는 식힌 국물을 한 끼 분량씩 나눠 담은 비닐 팩 열몇 개도 챙겨주었다.
“점심에 먹은 건 분말수프도 넣고 내가 따로 간도 해서 맛있었는데 이 국물만으로는 싱거울 거야. 그래도 꼭 간 잘해서 다 먹어? 꼭! 잘 먹고 다녀. 나 속상해서 빡치게 하지 말고!”
나는 그 당부를 가을 내내 정말 잘 지켰다. 뒤죽박죽된 일상을 어느 정도 가지런히 정비했고, 잘 챙겨 먹었고, 유난히 마음이 너절해진 날에는 어떤 의식처럼 J의 사골국을 꺼내 데워먹으면서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곱씹었다. 인사과에 부당한 상황을 알리며 팀장과의 조정을 부탁했고, 끝내 조정이 안 돼서 원래 부서로 돌아간 뒤부터는 조금씩 내 페이스를 되찾았다. 운명의 기습에 잠시 녹다운된 내게 응원 대신 비난만 하던 애인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물론 이 모든 게 단번에 이뤄지진 않았다. 핏물을 빼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듯이. 하지만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힘든 시기가 어느새 저 멀리 지나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게 J의 ‘진짜 미친 사리곰탕면’ 덕이라고 생각한다. 결코 내 것일 수 없다고 여겼던, 내가 소중하다는 감각과 나를 다시 이어준 한 끼의 식사. 어떤 음식은 기도다. 누군가를 위한. 간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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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혼비 에세이, <다정소감> 중에서
( 추천지수 : ★★★★★ )
나도 누군가의 한 시절에 이렇게 다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정하자 누군가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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