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집으로 돌아오면 이미 몸은 녹초가 된 상태였죠. 그렇게들 빛난다고 하는 젊음인데 저의 하루는 ‘일’과 ‘잠’ 두 가지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점점 사라지는 기분이었어요. 한 사람이 하루에 쓸 수 있는 에너지가 100이라면, 퇴근할 때쯤 제 몸에 남은 에너지는 10퍼센트 이하였습니다.
어느 날 지칠 대로 지친 몸을 끌고 침대로 들어가려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대로 잠들기엔 너무 아쉽다.’
이렇게 삭막한 하루들만 쌓인다면 10년 뒤 내 삶이 어떤 모습일지 가늠이 되지 않았습니다.
내 몸에 남은 약간의 에너지를 써서라도 뭔가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피로함에 눈이 반쯤 감긴 나 자신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주문을 걸었습니다.
‘그래, 작은 여행을 떠나자. 집 근처 카페로, 공원으로 여행을 가는 거야. 아직 내 하루는 끝나지 않았어.’
호흡을 가다듬고 현관문 손잡이를 돌립니다. 남은 에너지를 최대한 길게 쓰기 위해 스스로에게 절전모드를 걸었습니다. 몸을 움직이고 눈의 초점을 옮길 때도 최소한의 에너지만 쓰기 위해 천천히 움직입니다.
특별한 일을 한 건 아니었어요. 걷고 싶은 곳을 걷거나, 신기해 보이는 곳을 구경하거나, 커피 한잔하며 책을 읽는 등 내가 하고 싶은 걸 했습니다. 익숙한 우리 동네였지만 낯선 곳으로 여행을 왔다고 생각하자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새롭고 신기한 풍경들이 보였습니다. 그렇게 짧은 여행을 즐기다가 내 몸의 에너지가 1퍼센트 남았다고 느껴질 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자투리 시간이 이상하게 달콤했고, 혼자 떠나는 여행은 그 뒤로도 종종 이어졌습니다. 하루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버렸지만 마음은 더 가벼워지는 것 같았거든요.
일상을 버티기 위해 최소한의 일탈을 시도한 것인데, 이 작은 여행이 저의 일상도 바꾸어놓았습니다. 전반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할까요. 회사에서도 전보다 쿨해졌습니다. ‘나’라는 것이 조금씩 차오르는 기분이었어요. 아마도 짧은 시간이지만 ‘나’를 잘 돌보아주었기 때문이겠죠.
오늘 하루 조금 우울하고, 내가 고갈되는 기분이라면 편한 신발로 갈아 신고 조용히 동네 산책 한번 다녀오면 어떨까요? ‘지금부터 작은 여행을 떠난다’는 마음으로요.
2. 퇴근 후 여행을 시작하기 위해 꼭 거쳐야 할 절차가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갭gap 타임’이라고 부르는데요, 내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곳에서 하루 동안 쌓은 수많은 생각들, 스트레스들을 잠시 내려놓는 시간을 말합니다.
갭 타임은 명상, 글쓰기, 차 마시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실천할 수 있지만 초보자에게는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끝내지 못한 일, 상사의 꾸중, 연인과의 관계는 옷과 함께 잠시 벗어두고 샤워를 해보세요. 따뜻한 물이 피부에 닿고, 밖에서 묻어온 먼지가 씻겨 내려가는 그 행위에 온전히 집중하는 거예요. 그리고 몸이 깨끗해지는 것을 느껴보세요. 평소보다 약간 천천히, 길게 그 과정을 즐깁니다.
이것은 일상과 나를 떨어트려 놓는 일종의 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가벼운 산책을 할 때조차 일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하와이에 간다고 해도 제대로 여행할 수 없을 겁니다. 바깥세상과 나를 떨어뜨리는 갭을 가지세요. 이 작은 행동이 여행에 큰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기 외에도 갭 타임의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상황과 취향에 맞게 선택해보세요.
☞ 편안한 곳에서 잠시 쉬기
집, 사우나, 단골 카페, 퇴근길 차 안 등 나에게 편한 곳이라면 어디든 좋습니다. 그곳으로 가서 잠시 쉽니다. 몸뿐 아니라 마음도, 몸속 장기도 함께 쉬게 합니다. 따뜻한 것을 마시며 마음을 고르거나, 잠시 수면을 취하는 것도 좋습니다.
☞ 이동 중에 갭 타임 갖기
샤워를 하거나 쉴 만한 상황이 아닐 땐 지하철, 버스 등에서 호흡을 가다듬는 것만으로도 갭 타임의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눈을 감고 천천히 편하게 숨을 쉬세요. 그리고 잠시 귀를 닫고 여러 가지 생각을 멈춘 채 들어오고 나가는 숨에 집중해보세요. 다른 생각이 떠오른다면 애써 지우려 하지 말고 그냥 바라보다가 흘려보내면 됩니다. 그리고 다시 호흡에 집중해보세요. 5~10분만 이렇게 해도 몸과 마음이 훨씬 가벼워질 겁니다.
☞ 내 하루에 사표를 쓰기
사표를 내면 그렇게 싫던 회사에서도 아름다움이 보이죠. 한 발 물러났기 때문인데요. 내 하루에도 사표를 써보세요. 하루 동안 지고 다닌 무거운 책임과 관계를 다 내려놓는 것입니다. 잠들기 전까지의 시간은 ‘덤’이라고 생각하고 즐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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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여행, 다녀오겠습니다, 최재원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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