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들고 있으면 세계는 익숙하고, 사방의 사물과 얼굴들은 형체를 그토록 급격하게 변화시키는 일 없이 지루하게 지속되는 듯하나, 그러나 시간의 바닥으로 시선을 돌리면, 우리는 이처럼 어지러운 빠른 굉음과 시커먼 기름덩이, 육중한 쇠철굿공이들이 만들어내는 기계의 거친 물살 속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고, 우리는 죽음으로 돌진하는 미친 열차를 타고 있는 것인데, 단지 그 위압적인 속도를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 그래서 구름이 저처럼 천천히 흘러가고 돌은 여전히 그 자리에 놓여있으며 하늘은 움직이지 않고 하루는 다른 하루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뿐. 그러한 어느 몽상의 순간, 아무런 예고도 없이 우리의 기차가 우리의 몸 위로 지나가리라. 휙, 하는 순간의 속도로. 그때 우리는 자신의 얼굴을 선로 바닥에서 보게 되리라.
- 배수아, <북쪽 거실> 중에서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발 비용’, ‘탕진잼’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형태 (0) | 2019.10.02 |
---|---|
‘괜찮아’의 늪에 빠진 요즘 시대 (0) | 2019.10.02 |
‘뉴트로’로 다시 태어난 복고 열풍 (0) | 2019.10.02 |
Wall-E (0) | 2019.09.28 |
네 인생의 이야기 (0) | 2019.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