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2. 17. 금
저녁까지 학교 도서관 열람실에 있다가, 자취방으로 가던 길에 아딸에 들러서 어묵꼬치를 몇 개 사가지고 와서, 자취방에 들어와 어묵을 먹고 책을 읽다가 꾸벅꾸벅 한참 졸았고, 그러다 친구에게서 온 전화에 잠이 깨어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복도 끝 화장실에 가서 샤워를 하고 잠이 들었다. 입었던 옷은 회색 니트와 청바지에 검은 색 패딩과 베이지색 목도리, 검은색 가죽가방.
2010. 12. 18. 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편의점에 가서 삼각김밥과 야채주스를 사가지고(자취방의 문은 잠그고 다녀왔었고), 라디오를 좀 듣다가 지하에 있는 세탁실에 내려가 빨래를 하고 돌아옴. 입었던 옷은 회색 집업후드와 레깅스 청바지.
- 그런데 이 시간 중 어딘가에서 내 엠피쓰리가 사라졌다.
엠피쓰리를 놔두었을만한 모든 곳, 청바지 주머니에서부터 점퍼 구석구석과 가방과 온 방안을 샅샅이 뒤져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예전에 자취방 안에서 홀연히 사라졌던 과외비 봉투를 떠올리며 누군가 내가 방을 비워둔 사이에 엠피쓰리를 훔쳐간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있을 만한 곳은 다 꼼꼼하게 뒤져 보았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었으니까.
집을 나와서, 차오르는 화를 꾹꾹 억누르면서 부지런히 땅바닥을 보면서 걸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어제 입었던 옷이 검은 패딩이 아니라 카키색 야상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왜 나는 오늘 아침까지 검은 색 패딩에 베이지색 목도리를 두른 내 모습을 너무나도 선명하게 떠올렸으며 그것이 어제의 옷차림이라고 굳게 믿었던 걸까?
더 황당했던 일은 도서관에 도착해서 일어났다.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일 퍼센트의 기대를 가지고 도서관 안 컴퓨터실에 가보았더니, 어제 사용했던 바로 그 컴퓨터에 엠피쓰리가 꽂혀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제 분식점에서 어묵을 살 때에 엠피쓰리를 듣고 있던 내 모습을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다. 아주머니가 "학생, 일로 와서 계산해"라고 말씀하신 것을 듣지 못하고 있다가, 아주머니의 입모양의 움직임을 보고 귀에 꽂혀 있던 이어폰을 빼내서 "계산"이라는 목소리를 들은 뒤에 어묵 값을 치르고 가게를 나왔던 것이다. 자취방에 도착해서 포장해 온 어묵을 내려놓고서 엠피쓰리를 책상 위에 내팽개쳤던 모습까지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다.
여기서, 지난 번에 영화 히든을 보고나서 썼던 포스팅 글에 덧붙이자면
비밀 테이프건 TV쇼건 영화건 심지어 누군가의 이야기이건 혹은 스스로의 기억이건 간에
세상을 조각내고 시공간을 재배치시킨 모든 '가공된 사건'들을 생각 없이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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