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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는 문화에서는 허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에요

유연하고단단하게 2022. 3. 26. 09:53

어찌 보면 영화가 넘쳐나는 시대다. 케이블 TV에서 줄창 영화를 틀어주고, 인터넷에도 영화 정보가 넘쳐난다. 과유불급이라고, 그래서 안 본 영화도 본 것 같고 예전만큼 영화를 보러 가는 행위가 설렘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혹시 이런 오늘날의 환경이 영화 보기에 더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그럴 수 있죠.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영화뿐 아니라 다른 분야도 다 그런 것 같아요. 사회가 권위를 다루는 방식 자체가 변해서 그래요. 그렇지만 왜 예전 같지 않나, 한탄하는 건 이해는 되지만 쓸데없는 짓이죠. 해봤자 소용없으니까. 대중은 점점 더 똑똑해지고 있고 전문가들은 점점 고리타분해지고 있는 상황이죠. 근데 똑똑해지고 있는 대중에게 불안함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에요. 제가 영화기자가 된 지 얼마 안 된 1995년과 비교해보면 불과 10년이 좀 넘었을 뿐인데 사람들의 분위기는 확 달라졌어요. 1995년이 딱 영화 100주년이었는데, 그때 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허영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그래서 타르코프스키의 <희생> 같은 작품을 극장에 보러가서 러닝타임 내내 졸고 나오면서도, 그 영화를 욕하지 않았어요. 어쨌건 그 영화를 봤다는 게 중요했죠. 사실 허영이죠.

 

그런데 저는 문화에서는 허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에요. 요즘 관객들은 허영이 없어요. 아니 내가 졸려 죽겠는데 이 영화를 왜 참고 봐야 해? 한다는 거죠. 우연히 낚여서 <희생> 같은 영화를 보면 욕하고 나와요. 감독의 자의식으로 충만한 쓰레기 영화다, 라는 말을 거침없이 날리죠. 말하자면 지금 관객이 훨씬 더 주체적이고 허영이 없는 거죠. 그런데 그게 아주 훌륭한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이기도 해요. 허영이 없으면 문화적으로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가 없어요. 허영이 있다는 건 자기 마음속의 빈 곳을 스스로 의식한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걸 채우려고 노력하고. 허영이 없으면 자기 스스로 충만하다고 생각하기에, 뭔가 다른 걸 자기 마음으로 초대할 만한 구석이 없어요. 지금으로도 충분히 재밌는데 왜 내가 타르코프스키를 보며 괴로워야 돼? 이런 식인 거죠. 그러면 그 사람은 어떤 특정한 문화적 시선, 세상을 보는 새로운 창에 대해 영원히 문을 닫아버리는 거예요.

 

1990년대 중반의 관객은 오늘은 짐 자무쉬 영화를 보러 가서 자고, 다음날은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보면서 잤더라도, 졸지 않고 본 5분씩이 쌓이고 쌓여서 어느 순간 도약의 순간을 경험해요. 훈련이 되니까요. 대중문화도 교양이니까 훈련이 필요해요. 사실 누가 봐도 재미있는 영화조차 그 영화를 볼 수 있는 훈련과 교양이 쌓여서 즐길 수 있게 된 거예요. <매트릭스> 같은 오락영화도 1950년대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와서 봤다면 하나도 재미가 없다고 할 거예요. 지금 우리가 <매트릭스>를 즐길 수 있는 건, 그걸 즐길 수 있을 만한 토대를 자라오면서 자기도 모르게 학습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평균적으로는 지금 관객이 훨씬 더 똑똑하지만, 조마조마한 면이 있어요.”



12년전 이동진 평론가의 인터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