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새로 팀에 들어온 아이가 눈엣가시처럼 성가셔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일에 대한 열정도 없고, 일의 퀄리티도 한참 떨어지고, 게다가 얼마 전 일을 시켜놨더니 온몸으로 싫어하는 티를 내는(타자를 탁탁 치는 것을보면 알 수 있다) 걸 보고 빈정이 팍 상했다.
그런데 최근 내 마음을 제일 어지럽힌 건, 그 애가 마음에 안든다는 사실보다도 내가 누군가를 싫어한다는 것, 그리고 그게 (내가 추구하는) '좋은 사람'의 마인드가 아니라는 어떤 도덕 의식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다. 같은 조가 된 아이들 중 몇 명이 비밀일기를 쓰자고 했는데, 비밀 일기장을 쓰지 않는 다른 아이가 배척당하고 외로움을 느끼게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나는 비밀일기를 쓰지 않을게" 라고 했다가 도리어 그들로부터 배척의 대상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 이후로도 학교와 직장에서 누군가로부터 어이 없는 이유로 미움 받고 해코지 당하는 일을 몇 번 겪으면서, 나는 누군가를 함부로 미워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로 다짐했던 것이다. 늘 온정의 손길과 따뜻한 마음과 위로만을 베푸는 사람이 되기로. 단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침 없이 누군가를 싫어하는 어른은 되지 않기로.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건 적어도 나에게는 건강하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가능하면 (객관적 근거가 있지 않는 한) 누군가를 싫어하지 않으려고 애써왔다. 친구들 무리 중에 누군가가 싫어지게 되면 절대 먼저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그 혹은 (대부분) 그녀를 싫어하는 이유 중에 내가 오해하거나 잘못 판단한 게 없는지 계속 곱씹어보았다. 심지어 나는 그런 이유로 스스로에 대한 심각한 혐오감에 자주 빠지곤 했다.
30대에 들어서면서 마음의 기력이 점차 소진되었고 몇 차례의 상담을 통해 '나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라는 감정을 갖게 되면서, 그런 자기 혐오에 빠지는 일은 거의 없어지기는 했지만.
누군가를 싫어하는 것, 그에게 싫어하는 티를 내는 것, 그를 싫어함으로 인해 공정하지 않은 일을 저지르는 것. 세 종류는 사실 좀 다른 카테고리이다.
이제는 나 자신에게 누군가를 싫어할 수 있는 자유를 주려고 한다. 싫어하는 마음이 눈빛과 말투와 행동으로 튀어나오는 일이 종종 생기더라도 너무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사랑 받을 수 없고 누군가에게 미움 받을 수도 있음을 삶의 과정을 통해 인정해왔듯이, 나도 때로는 설명할 수 없이 싫어지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거라고.
그리고 그 미워하는 마음을 괴롭힘이나 상처 주는 방법이 아닌, 서로에게 '안전한 일정 거리를 두는 것'으로 대응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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